유방암은 국내 여성 발병률 1위다. 그래서 어머니가 유방암이라면 딸도 같은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실제로 가족(어머니, 딸, 자매) 중에서 50세 이전에 유방암에 걸렸다면 가족력이 없는 여성보다 유방암에 노출될 가능성이 2배 정도 높다. 특히 유방암 발생 위험은 유방암에 걸린 가족이 많을수록 높아진다.
영국의 국제 학술지‘랜싯(Lancet)’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20대 건강한 여성의 유방암 평생 위험도(20세까지 건강했던 여성이 80세까지 유방암에 진단될 확률)는 가족력이 없으면 7.8%,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1명 있으면 13.3%, 2명 있으면 21.1%로 추정된다.
또 가족 중에 더 젊은 나이에 유방암에 걸렸으면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60대에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보다 40대에 진단받으면 딸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
◇BRCA 유전자 변이 있으면 유방암ㆍ난소암 위험
유방암이 가족 내에 여러 명이 발생하면 유전적 변이를 의심할 수 있다.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는 다양하다. 이중 BRCA(BReast CAncer gene)1과 BRCA2 유전자가 유전성 유방암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BRCA1ㆍ2 유전자는 원래 암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암을 일으키는 외부 자극에 취약해지면서 유방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한상아 강동경희대병원 외과 교수는 “BRCA1ㆍ2 유전자 변이는 아들 딸 구분 없이 50% 확률로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며 “이 경우 가족 중 여러 사람이 유방암 진단을 받거나 젊은 나이에 유방암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가족력이 없어도 양측 유방암, 여러 종류의 암이 한 사람에서 생기거나 삼중 음성 유방암 등 다양한 양상으로 유방암에 걸릴 수 있고, 난소암ㆍ췌장암 등에 노출될 위험도 높아진다”고 했다.
BRCA1·2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평생 유방암 발생 위험은 70~80%, 난소암 발생 위험은 30~40%에 달한다.
난소암 환자의 25% 정도에서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다. 배재만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BRCA1 유전자가 있다면 평생 난소암에 걸릴 위험이 39%, BRCA2 유전자가 있다면 11% 정도”라고 했다.
◇혈액검사로 간단히 확인 가능
유방암 가족력이 있으면 혈액검사를 통한 유전자 검사로 BRCA1·2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 가족, 유방암ㆍ난소암ㆍ전이성 전립선암ㆍ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 만 40세 이하에서 유방암이 발병한 환자, 만 60세 이하에서 삼중 음성 유방암이 발병한 환자, 유방암과 함께 난소암이나 췌장암이 발병한 환자, 양쪽 유방에 유방암이 발병한 환자는 검사가 권장된다.
유방암이 발병하기 전에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면 약물ㆍ수술 등으로 치료하면 된다. 대표적인 약물 치료법은 예방적 항호르몬제(타목시펜)와 피임약 복용이다. 타목시펜은 유방암을 50%, 피임약은 난소암을 50%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아직 암이 생기지 않은 유방ㆍ난소를 예방적으로 제거하는 수술도 고려할 수 있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택한 바로 그 방법이다. 유방ㆍ난소암 가족력이 많았던 안젤리나 졸리는 BRCA 유전자 검사로 BRCA1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고 2013년 예방적 절제술을 받았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은 유방암을 90% 이상, 예방적 난소절제술은 난소암 85%, 유방암 50%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됐다.
배재만 교수는 “BRCA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거나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은 30~35세에 조기 검진(초음파 및 CA-125 검사)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BRCA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을 때 BRCA1의 경우 35~40세, BRCA 2는 40~45세에 난소를 예방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권고된다”고 했다.
다만 예방적 절제술을 받아도 암 발생 위험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한상아 교수는 “피부에 남아 있는 미세한 유선(乳腺) 조직 때문에 유방암 발생 확률이 5% 정도는 낮지만 수술은 한 번하면 되돌릴 수 없으므로 환자 나이, 결혼 및 출산 계획, 건강 상태, 심리 상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