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소득이 감소한 주택 세입자들에 의한 체납 렌트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5월까지 약 700만 명의 세입자가 체납 상태로 체납 렌트비는 약 4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가 세입자 보호 정책을 발표했지만 더딘 시행에 수많은 세입자들이 퇴거 위기에 놓였다. 최근 정부의 퇴거 유예 조치에도 불구하고 가차없는 퇴거 명령을 내리는 기업형 건물주들이 늘고 있어 대규모 퇴거 위기 우려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지적했다.
체납 세입자 가차 없이 거리로 내모는 기업형 건물주 증가
일부 건물주‘고리 대출이라도 받아서 렌트비 내라’황당한 요구
◇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밀린 렌트비 내라
장거리 버스 운전기사 마비아 로빈슨(63)은 고된 직업에도 버스에 오르는 승객을 항상 미소로 대한다. 때로는 일주일씩 거리는 힘든 운전 일정에도 그녀가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일이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녀에게 돌아갈 집이 없어졌다. 그동안 밀린 렌트비로 인해 건물주에 의해 퇴거 명령을 받고 호텔에서 생활하는 신세가 됐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운전 일정이 대폭 축소됐고 그녀의 수입이 반 토막이 나면서 렌트비도 한두 달 치씩 밀리기 시작했다. 지난 1월까지 그녀가 체납한 렌트비는 약 5,000달러.
건물주인 인비테이션 홈스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은 그녀는 카운티에서 시행 중인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약 4,000달러를 납부하겠다고 답변을 보냈다.
하지만 건물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특별한 해명 없이 해당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내용과 함께 추가 수입을 벌 수 있는 방법 등이 적힌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고리의 ‘페이데이 렌더’를 통해 대출을 받거나 머리카락, 혈액을 팔고 난자를 기증해서 수입을 마련하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들이었다.
관할 법원은 건물주의 퇴거 소송을 받아들였고 결국 셰리프 경관 2명이 지난 3월 그녀의 집을 방문해 출입구 자물쇠를 교체하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고 말았다.
◇ 5월까지 체납 렌트비 400억 달러 규모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세입자 보호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렌트비 체납 세입자를 대상으로 퇴거 조치를 취하는 건물주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세입자 퇴거 소송을 벌이고 있는 건물주들은 대부분 전국적으로 수만여 채의 임대 주택을 운영 중인 기업형 건물주들로 엄청난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세입자 퇴거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피닉스, 밀워키, 달라스 등 전국 27개 대도시에서 약 31만 8,091 세입자 가구가 퇴거 위기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렌트비 체납 상황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밀린 렌트비를 갚지 못할 경우 전국의 수많은 세입자들이 퇴거로 집을 잃고 노숙자 신세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 연구 기관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오는 5월까지 약 700만 명에 달하는 세입자에 의한 렌트비 체납 규모가 약 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최근 경고했다. 팬데믹 이전 연평균 약 90만 세입자 가구가 퇴거를 당했던 것과 비교할 때 대규모 퇴거 위기가 상당히 커진 상황이다.
◇ 퇴거 유예 무시하는 기업형 건물주
로이터 통신이 법원 퇴거 소송 기록 검토와 세입자 보호 단체 인터뷰를 실시한 바에 따르면 렌트비 체납 세입자를 대상으로 가차 없이 퇴거 소송을 제기하는 건물주는 기업형 건물주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비영리 단체 ‘프라이빗 에퀴티 스테이크홀더 프로젝트’는 팬데믹 이후 전국 7개 주 27개 카운티에서 기업형 건물주들이 제기한 퇴거 소송이 7만 건을 넘는다고 최근 보고했다.
짐 베이커 디렉터는 “조사 자료는 일부에 불과하고 기업형 건물주에 의한 퇴거 소송은 실제로 더욱 많다”라며 “세입자들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퇴거 유예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등 노력을 보이고 있음에도 기업형 건물주들이 퇴거 위기를 키우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기업형 건물주들은 최근 사상 최고 수준의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렌트비 체납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가차없는 퇴거 소송을 진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로빈슨을 길거리로 내몬 건물주 인비테이션 홈스의 지난해 임대 수익은 약 2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인비테이션 홈스가 운영 중인 임대 주택의 공실률은 0%에 가까울 정도로 낮고 회사의 주가는 3월 이후에만 두 배로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비테이션 홈스는 CDC 퇴거 유예 조치가 시행된 지난 9월 이후 약 710건의 퇴거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비테이션 홈스와 더불어 S2 캐피털(약 1,160건), 벤트론 매니지먼트(약 1,134건), 프리티엄 파트너스(약 1,074건), 웨스턴 웰스 캐피털(약 1,018건) 등도 퇴거 소송에 매우 적극적인 기업형 건물주들로 조사됐다.
◇ 정부 감독 기구, ‘불법 퇴거 실태 조사하겠다’
현재 대부분의 퇴거 소송이 법원에 계류 중으로 세입자들은 의회를 통과한 500억 달러 규모의 세입자 구제안이 시행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세입자 구제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걸릴 전망으로 그 사이 세입자들은 퇴거 소송을 대처하기 위한 법률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등 2차 재정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또 퇴거 소송에서 이기거나 소송이 취하되더라도 관련 기록이 남기 때문에 향후 임대 주택을 찾을 때 적지 않은 어려움이 세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CDC는 지난달 퇴거 유예 조치가 종료되기 2일 전 유예 조치를 오는 6월 30일까지로 연장하기 결정했다. CDC의 퇴거 유예 조치를 위반하는 건물주의 경우 최고 20만 달러(불법 퇴거로 사망 발생 경우 최고 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게 된다.
CDC의 퇴거 유예 조치 시행에도 공공연히 퇴거 소송을 진행하는 건물주가 늘자 지난 3월 ‘소비자 금융 보호국’(CFPB)과 ‘연방 통신 위원회’(FTC)는 주로 기업형 건물주를 대상으로 불법 퇴거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두 정부 기관은 “퇴거를 유예하는 정부 조치에도 불구하고 기업형 건물주에 의한 불법 퇴거 관행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세입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모른 채 퇴거 당하는 경우가 많고 코로나19 피해 비율이 높은 고령층과 소수 유색 인종을 대상으로 한 퇴거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