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말단으로 혈액을 운반하는 말초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팔다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이럴 때에는 말초혈관 질환을 의심해 혈관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말초혈관 질환으로는 대동맥폐색증ㆍ하지동맥폐색증ㆍ하지정맥류ㆍ심부(深部)정맥혈전증 등이 있다.
◇움직일 때만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면?
대동맥폐색증과 하지동맥폐쇄증은 대표적인 말초동맥 질환이다. 대동맥ㆍ하지동맥이 죽상동맥 경화로 인해 좁아지거나 막혀 발생한다.
초기에는 걸을 때 다리가 저리거나 통증을 느끼나 휴식을 취하면 증상이 호전되므로 대수롭게 여기기 마련이다. 특히 디스크 질환과 증상이 비슷해 여러 병원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안형준 경희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 때는 증상이 없다가 움직이거나 걸을 때만 통증이나 저림 증상이 나타난다면 하지동맥폐쇄증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 좋다”며 “초기에는 약물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도 증상을 완화할 수 있지만, 진단이 늦어질수록 혈관 막힘 정도가 심해 감각 마비와 조직 괴사로 이어져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진단은 발목과 팔에서 측정한 혈압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이후 환자 상태에 따라 초음파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병행해 혈관 막힘 정도를 확인한 후 치료 방향을 정하게 된다.
◇움직여야 예방할 수 있는 ‘하지정맥류’
하지정맥류는 종아리의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구불구불해지고 겉으로 튀어나는 질환이다. 발병 원인은 혈액 역류다. 정맥 내에는 역류를 막는 판막이 있지만, 노화ㆍ유전 등 다양한 원인으로 판막 기능에 문제가 생겨 정맥이 늘어나고 구불구불해지는 것이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고 쉽게 부종과 쥐가 나면 의심해 봐야 한다.
안형준 교수는 “고연령일수록, 과체중일수록, 장시간 서서 있어야 하는 직업군일수록, 임신한 여성일수록 정맥 압력이 증가하고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쉽게 정맥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발병 초기에는 보존적 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지만, 한 번 생긴 하지정맥류는 쉽게 없어지지 않으므로 증상에 따라 주사·압박·레이저·고주파 치료, 정맥류 제거 수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이상 있는 정맥을 모두 제거하는 전통적인 정맥류 제거술이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현재에는 혈관 내 레이저ㆍ고주파 치료법이 대세다. 레이저ㆍ고주파로 발생한 열을 이용해 정맥 내 혈관내피 세포에 손상을 일으켜 병든 정맥을 제거하므로 수술 후 통증과 흉터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정맥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올리고 있거나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는 행위는 금물이며 종아리 근육을 자극할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칭과 적절한 운동이 필수다.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심부정맥혈전증’
심부정맥혈전증은 깊은 곳에 위치한 정맥 내 혈전이 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질환이다. 하지정맥류와 증상이 비슷해 병원에서 정맥 초음파 검사를 받다가 발견할 때가 많다. 장거리 비행 시 좁은 좌석에 앉은 승객에게 주로 발생한다고 하여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안형준 교수는 “정맥 초음파 검사는 하지정맥류를 진단하는 동시에 깊은 곳에 위치한 정맥의 혈전 발생 유무까지 확인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며 “혈전이 발견되면 심부정맥혈전증으로 진단하는데, 혈전이 떨어져 폐동맥을 막게 되면 폐색전증을 유발해 호흡곤란ㆍ가슴통증ㆍ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즉시 치료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증상에 따라 항응고제를 사용한다. 증상이 심하면 혈전제거술이나 혈전용해술로 혈전을 신속히 제거한다. 잘 움직이지 못해 혈액이 정체될 가능성이 높거나 혈액 성분의 응고 인자에 이상이 있는 환자라면 재발 가능성 때문에 항응고제 중단에 주의해야 한다. 약 복용 및 중단 시점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의한 후 결정해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