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대상 증오범죄가 급증하면서 미주 지역의 한인 노인들도 일상을 두려움 속에 보내고 있다고 AP 통신이 20일 상세히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LA 도심 실버타운에 거주하는 한인 김용신(85)씨는 요즘 웬만해서 집밖에 나서지 않고 나가게 되면 꼭 호루라기를 챙긴다고 밝혔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면 도움이라도 요청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최근 부인과 함께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집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 상황이다. 그는 “감금된 것처럼 종일 집에 머물며 전혀 나가지 않는다”라면서 “산책은 생각도 못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김향란(74)씨는 아예 교외 딸 집으로 잠시 거처를 옮겼다. 딸이 자신의 안전을 걱정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또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채성희(74)씨는 걸어서 6분 거리의 한인 마켓도 이제 혼자 가지 않고 아들과 함께 다녀온다. 한국에 사는 딸은 어디도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그는 전했다.
미 공군에서 복무했던 대니 김씨는 지난 2월 한인타운에서 증오범죄 폭행을 당했다. 당시 남성 2명이 자신을 때리고 “중국 바이러스”와 “칭총(Ching Chong·아시아계 주민을 깔보는 비속어)”이라고 소리치는 등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AP통신은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 증가가 상대적 약자인 노인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고 전했다. 지난달 애틀랜타에서 백인 남성의 총격에 한인 4명 등 아시아계 6명을 비롯해 8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나 ‘쿵플루’(Kung Flu)라고 부르면서 ‘혐오 프레임’을 강화했다는 책임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모든 한인 노인들이 두려움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호(76)씨는 걸을 때 보행기가 필요할 정도로 건강이 썩 좋지 않은 데다가 다른 한인 노인들과 비슷한 걱정에 외출을 삼가왔지만, 최근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달 말 LA 한인타운에서 LA 한인회 주최로 열린 시위 행진 현장에 버스를 갈아타면서까지 와서 ‘아시안 증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I’m not a virus)’라는 표지를 보행기에 붙이고 외치며 시위에 힘을 보탰다. 이씨는 “시간이 많거나 건강해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뭉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안 증오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