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음악시장인 미국에 'K팝 시스템'을 접목하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방탄소년단(BTS)을 키워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미국에서 K팝 스타일의 보이그룹을 데뷔시키는 프로젝트를 18일 발표했다. 세계 최대 음반사 중 하나인 유니버설뮤직그룹이 파트너다.
이번 프로젝트가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K팝 보이그룹을 발굴하고 데뷔시키는 주 무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새 보이그룹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기는 하지만 유니버설뮤직그룹이 미국 미디어와 함께 제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선발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두는 양사 합작 레이블이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오디션을 통해 K팝 그룹을 선발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윤석준 빅히트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빅히트가 지난 16년간 정립해 온 '성공 방정식'을 유니버설뮤직그룹과 함께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인 미국에 적용하는 협업"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기획사들은 외국에서 K팝 시스템을 적용해 그룹을 육성하고 데뷔시키는 전략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소니뮤직과 함께 오디션을 통해 제작한 일본 걸그룹 '니쥬'(NiziU)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현재까지 해외 기반의 K팝 그룹 육성 전략은 한류 영향력이 비교적 크고 문화적으로도 유사성이 높은 동아시아권에 집중됐다.
미국 시장 진출은 주로 현지 레이블이 국내 아티스트 기획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프로모션 등을 맡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SM엔터테인먼트가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레이블 캐피톨뮤직그룹(CMG)과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SuperM)을 공동 기획한 사례가 있지만 기존 SM 소속 그룹 멤버들을 모은 연합팀이었다.
국내 기획사와 글로벌 음반사가 초기 발굴 단계부터 협력해 미국에서 K팝 그룹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전례 없는 시도다.
이런 시도가 가능해진 것은 미국에서 K팝이 그만큼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K팝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 BTS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팬덤을 거느린 보이그룹이 됐다.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원디렉션 등 세계를 휩쓴 보이밴드 계보에 현재는 BTS가 자리한 셈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빅히트는 2018년 이후 북미에서 20% 내외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음반사들 역시 "음악, 퍼포먼스, 패션, 뮤직비디오, 팬과의 소통이 결합된 풀 프로덕션"을 특징으로 하는 K팝 시스템에 매력을 느끼고 K팝과의 협업에 뛰어드는 추세다. 헌신적인 소통과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낸 K팝 팬덤 특유의 충성도는 상업적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그만큼 K팝이 미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파이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미 K팝의 브랜드 정체성은 확고하고 팬들의 충성도도 높다"며 "유니버설뮤직이 직접 론칭하기보다는 빅히트와 손을 잡고 만드는 K팝이 '진정한' K팝으로 미국 팬들에게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협업 배경을 분석했다.
유니버설뮤직그룹의 유통망과 라디오, 방송 등을 상대로 한 프로모션 노하우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BTS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 역시 미국 현지 레이블인 컬럼비아 레코즈가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에 뛰어들며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K팝 시스템을 아시아 문화권을 벗어나 북미 시장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것은 도전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윤석준 CEO는 이번 프로젝트를 "산업의 결합을 넘어 문화의 결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K팝 시스템은 연습생을 발굴해 철저하게 트레이닝하고 음악과 콘셉트, 생활까지 활동 전반을 기획·관리하는 이른바 '토털 매니지먼트' 전략을 펴왔다.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서구 문화권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온 것도 사실이다.
이규탁 교수는 "유니버설뮤직은 그룹을 홍보하고 유통·배급하는 측면에 더 집중하고, 음악을 만들고 데뷔시키는 일련의 과정에서는 소위 말하는 K팝식 시스템을 중심으로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