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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문학회 2020문학상공모 대상 수상작] 우연이 아니에요

지역뉴스 | | 2021-01-11 15: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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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영주권이 있어야해, 얘 너네는 어쩜 그렇게 겁도 없이 가게를 하니.” 어느날 엄마같은 고모가 걱정을 많이 하면서 고모 가게에서 영주권 신청을 하자고 하셨다.

 

변호사한테 물어보니 뉴욕에서 신청하는 것보다 고모의 가게가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신청하는 것이 더 빠르겠고 또 고모네는 옛날에 오셔서 세금 보고를 많이 했으니 잘 될 것이라고했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면 시간을 내어서 고모도 볼겸 필라델피아에 가서 일을 하고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이민 온 우리부부는 지인의 도움으로 맨하탄 중심가에 모자 가게를 시작했는데 때마침 영국제 캥거루표 상품이 대유행을 할때여서 가게가 생각보다 잘됐다. 또 남편과 아이들이 잘 도와주어서 나는 한국에서부터 해 온 결혼식때 꽃장식하는 일을 겸해 두 가지 일을 했다. 꽃 만지는것을 좋아해서 주문이 들어오면 나는 신이 나서 뛰었다.

그렇게 시간이 갔고 한 달 뒤 쯤 드디어 영주권 인터뷰하는 날이 잡혔다. 인터뷰할 때 필요한 서류니 잘 가지고 있다가 당일날 잊지말고 꼬옥 가지고 오라는 당부와함께 변호사가 커다란 봉투 하나를 건네 주고 갔다.

달력에다가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표를 하고 “서류” 라고 써놨다. 인터뷰는 월요일 오전 11시다. 그런데 일요일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성가대 단장 결혼식이 있어서 여러가지를 준비하느라 금요일 부터 무척 바빴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엔 파티장소로 꽃을 옮겨야 했고 도와주는 손길이 여럿 있었지만 정신 없이 바빴다.

한국하고 다르게 미국은 저녁 시간에 결혼식을 한다. 파티 후에는 꽃을 깨끗이 치워 달라는 호텔측의 요구로 밤늦은 시간에야 모든 일이 끝났고 나는 녹초가 되어 집에 오자마자 잠에 빠졌다.

이튿날 아침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드디어 영주권 인터뷰하는 날 이다. 화장을 정성들여 하고 미리 골라두었던 곤색 투피스를 입고 서둘러 펜스테이션 으로 가서 필라델피아행 기차를 탔다. 그런데 자리에 앉고 보니 몇일 간의 꽃장식 으로 손이 나뭇꾼 손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백 안에서 손 다듬는 도구를 찾아내 손질을 마악 하려고 하는데 중년의 점잖은 미국 신사가 눈인사를 하고 옆에 와 앉았다. 다른 자리로 옮길까 했지만 그 신사가 앉자마자 잠이 드는바람에 손은 다듬지 못하고 그냥 여러가지 질문에 답해야 할 메모지를 꺼내 열심히 읽고 외웠다.

기차가 어느덧 필라델피아에 도착했고 내려서 이민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이민국 입구에서 나를 통역하려고 나온 남자 어른을 만났는데 서로 인사를 나누자마자 봉투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봉투를 집에 놔두고 온걸 알았고 깜짝 놀랐다.

“어머... 어떻게 해요 ... 제가 안 가지고 왔어요.” “네에? 아니 그걸 안 가지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

봉투 안엔 이런저런 자료들이 다 들어 있고 특히 그동안 세금 보고한 증서가 그 안에 있어서 꼭 가지고 들어가야하는데 이거 야단났다면서 그분은 안경을 벗었다 썼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 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머리속이 하얘졌다.

나올 때 가지고 오려고 구두 옆에 두었었는데 어째서 그 중요한걸 잊고 왔을까 내가 생각해도 한심스러우면서 또 그동안 나를 위해 애를 많이 쓰신 고모 얼굴이 떠올라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선서를 하고 싸인을 하는 동안 통역사는 아예 포기한 눈치여서 내 마음은 마치 물에 젖은 이불처럼 무거웠다.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아뿔싸 !! 다른사람들 부를 때 보니 거의 남자 심사위원이었는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은 안경을 쓰고 왠지 날카로워 보이는 40대 미국 여성이었다. 다시한번 무언가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책상앞에 나는 작아질대로 작아져 앉았고 이미 모든걸 포기한 통역사는 모기만한 소리로 나를 소개했다. 이분이 나를 도와주려고 온 사람인가 싶었다.

심사위원은 미리 와있는 서류들을 빨리빨리 넘기면서 나는 아예 쳐다 보지도 않았고 또 어떤 질문도 해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이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 너한테서는 음식 냄새도 안나고 너는 모델 같은데? 나는 믿을 수가 없다.” 통역사의 한숨소리가 작게 들렸다.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이게 뭔데 내가 이렇게 쫄아있지... 그냥 영주권 인터뷰하는 거야... 다시 하면 되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갑자기 담대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세상에 이럴 수가 그때 나는 나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오늘이 내게 아주 중요한 날 이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예쁘게 화장하고 최고로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나왔습니다. 아끼는 향수도 뿌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이 나라 미국과 또 당신에 대한 예의 라고 생각 했습니다.” 

통역사는 그대로 통역을 했고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 보았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내게 두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고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두 손을 만졌다. 그리고 나서 “너 정말로 일을 많이 하는구나. Congratulations !!”

쾅쾅 도장찍는 소리와 함께 통역사가 벌떡 일어나 내게 “얼른 땡큐하세요”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천천히 “Good Bless you”라고 했다. 도깨비에 홀린 듯 밖으로 나왔고 통역사가 운전을 해서 30분 거리에 있는 고모가게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을 보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나 안된다고 하던 통역사도 나처럼 놀랐는지 아니면 무안했는지 다행히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얼굴을 보자 고모는 떨어졌다고 생각하셨는지 눈치만 살피셨다. 저 시원한 물 한잔 주세요 물을 벌컥벌컥 마신후 통역사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여기서 이 일을 한 지가 오래 됐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정말 오늘같은 일은 처음입니다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고모가 달려와서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가게에 계시던 고모부가 들어오셔서 얘기를 듣고는 잘했다 잘했어하시며 “너희 고모는 가게 일도 안 도와주고 아침부터 여기서 기도만 하셨단다.”

잊고온 서류봉투 대신 거친 손이 필요 했던 일, 내옆에 앉아 손을 다듬지 못하게한 신사, 안 된다고 단정하던 통역사,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이 보이듯 마음이 편안했던 일, 생각지도 못한 근사한 말을 내가 한 것 등등 하나하나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걸 알게됐다.

심한 부정과 애타는 걱정 뒤에 찾아온 통쾌한 반전, 그 일이 있고부터 나는 무슨 일이든지 서두르지 않고 한번 더 챙기는 습관이 생겼고 그냥 길에서 스치는 사람일지라도 내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주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또한 미리 끝났다고 빨리 판단 하지않고 완전히 끝날 때까지 인내해야 하는 걸 배웠다.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날의 그 감동은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 나를 키우고 나를 살맛나게 한다. Life is good!!

[애틀랜타 문학회 2020문학상공모 대상 수상작]   우연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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