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국이었던 미국 의회가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거쳐 수도 워싱턴DC로 이전한 것은 1800년의 일이었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을 참고로 한 설계도에 따라 포토맥강 동쪽 언덕에 세워진 의회 건물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당으로서 기능했지만,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1814년 수도에 침입한 영국군이 의회 건물을 불태운 사건이 대표적이다.
나무 바닥 등 가연성 소재가 많이 쓰였던 의회 건물 중에서도 상원이 큰 피해를 봤다.
화재 4주 후 회기가 시작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매디슨은 수도에서 유일하게 불타지 않았던 한 호텔에서 상원 회의가 열리도록 조치했다.
상원이 화재 피해가 복구된 의회 건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5년이 지난 1819년의 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7일 의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 중 하나로 1954년의 총격 사건도 소개했다.
푸에르토리코인 4명이 방청객 자격으로 의회 건물에 들어가 회의 중인 하원 의원들을 향해 반자동 권총을 난사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주장한 이들이 발사한 총알에 하원 의원이 5명이 맞았지만, 모두 생명은 건졌다.
이들은 모두 체포됐고, 주범에겐 85년형이 선고됐다.
1998년에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병력이 있는 한 남성이 의회 건물로 입장하려는 도중 검색대에서 제지를 받자 갑자기 38구경 권총을 꺼내 들고 총을 발사했다.
의회 경관 2명이 숨졌고, 남성은 체포됐다.
편집증을 앓았던 범인은 평소 연방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주변에 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범행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3년엔 의회 경관이 쏜 총에 한 흑인 여성이 숨졌지만, 의회를 침입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이 여성은 백악관 인근 검색대에서 자동차 사고를 낸 뒤 경찰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NYT는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대한 공격을 조장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국군의 방화를 포함해 총격 사건까지 의회가 적지 않은 공격을 받았지만, 전날 발생한 시위대의 난입과는 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라며 워싱턴DC에 모인 시위대를 선동한 결과가 전날의 의회 난입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