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파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보다 더 열심히 코로나 대처에 나설 수는 없다’는 뜻의 말을 하면서-. 정말인가. 사실이라면 흥미로운 반전이다.
알려진 것처럼 백악관과 국립 앨러지 전염병 연구소장인 닥터 파우치는 껄끄러운 사이다. 그는 대통령의 말과 반대되는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쉰 목소리 때문에 얼마 전 목의 작은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은 그는 톤이 높지는 않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늘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감염된 코비드-19 확산에는 백악관 모임이 핫 스팟이었다는 속쓰린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 캠프에서 제작한 30초짜리 TV 홍보물에 등장한 파우치는 이와는 다르다. 이 영상은 대통령이 코비드-19 치료를 받고 월터 리드 군병원을 퇴원하고 난 뒤 나왔다. 경합주 중 한 곳인 미시간에서 방영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거두절미, 개똥이가 잘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말순이가 잘하고 있다로 살짝 주어가 바꿔치기 된 것이다. 한국 정치권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어법이다.
원래 했던 닥터 파우치의 말을 간추리면 대략 이렇다. 지난 3월 코로나 대응애 관해 팍스 TV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 이 일에 하루종일 매달려 있다. 백악관 회의에 참석하거나, 아니면 전화로. 밤 12시, 새벽 1시, 2시에 전화가 연결되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의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지금 모두 그렇다. 누구도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I can’t imagine that anybody could be doing more.)....”
마지막 문장, ‘누구도..... 없다’가 이번 트럼프 홍보 동영상에 쓰였다. 닥터 파우치가 등장하면서 이 말을 한다. 앞의 말들은 쏙 빠졌다. 동영상을 보면 ‘누구도 트럼프 보다 열심히 코로나 대처에 나설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언론, 특히 TV 방송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원본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금방 비교가 가능하다.
이번 크리스마스면 팔순이 되는 파우치 할아버지는 다소 화가 난 듯 하다. 그는 자기가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진짜 불운하고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지난 50여년 간의 공직생활 중에 어느 후보도 직간접적으로 지지한 적이 없다” 는 말도 덧붙인다. 이 광고를 내려야 한다는 뜻이냐의 CNN 앵커의 질문에 “물론이다. 공화당 캠프는 동의없이 내 말을 마음대로 선거 홍보물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캠프의 입장은 어떨까.
“이말은 전국적으로 방영된 TV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하고 있다고 닥터 파우치가 자기 입으로 말한 것이다. 취소할 마음이 없다.”
하하... 이럴 때는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듣고 보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네. ‘정부의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구성원들, 이들의 대표자는 곧 ‘트럼프’니까. 논리의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당락이 결정될 경합주에서도 밀리는 트럼프 캠프에서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정치란 이렇게 낯이 두꺼워야 하는거구나 하는 깨달음도 새삼스럽다.
워싱턴 정치, 대통령 선거가 이렇게 재미있으니 후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밋밋한 동네 교육위원 선거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유권자들이 전국 뉴스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지역 문제에는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은 미디어의 역기능 중 하나로 지적된다. 로컬 미디어의 입지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원인의 하나로도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