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지지율이 크게 뒤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제재법과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국 때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겉으로는 홍콩의 자유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중국 정부의 책임론을 내세우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바이든 전 부통령과 중국을 엮어 자신의 지지층을 한데 모으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이 오랫동안 누려온 특혜를 끝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며 “이제 홍콩은 중국 본토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특혜도 없고 특별한 경제적 대우도 없으며 민감한 기술 수출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은 홍콩 민주화 억압세력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수출규제가 뼈대다. 홍콩 여권 소지자에 대한 특별처우 조항 폐지와 범죄인 인도협정 중단도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국가보안법이 미 국가안보·외교정책·경제에 비상한 위협이 된다며 ‘국가비상사태(national emergency)’를 선포한다고도 밝혔다. 양측 민관 분야의 협력도 종료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홍콩의 자치권과 인권 침해에 연루된 중국 관리 및 이들과 거래한 은행을 제재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날 행사가 중국 제재가 아닌 선거유세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문제로 연설을 시작했지만 재빨리 선거의 모든 이슈를 다루는 것으로 넘어갔다”며 “연설의 상당 부분을 바이든 전 부통령 반대에 할애했다”고 비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그동안 중국에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겨냥해 “바이든의 경력은 중국 공산당에 큰 선물이었다”며 “이는 미국 근로자들에게 재앙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바이든이 중국에 우리 비밀을 훔치도록 허용했다” “바이든이 중국에 주는 선물이 더 있었을 것”이라는 등 일방적인 주장을 폈다. 미국민이 중국을 경쟁상대로 여기는 상황에서 자신은 중국에 강한 정책을 펴는 반면 바이든은 친중파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의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역사상 두 대선후보가 이렇게 달랐던 적은 없다”며 에너지부터 경제·교육·이민 등 모든 분야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을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중국 제재 역시 큰 틀의 선거전략 중 일부분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정책을 강조해야 할 행사를 즉흥적인 유세전으로 전환해 무역과 치안, 아들의 중국 사업까지 바이든 전 부통령을 공격했다”며 “백악관의 메시지가 이렇게 노골적인 경우는 드물다. 이는 정치보좌관들이 요구한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선거전략으로 미중 관계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미국의 홍콩 제재와 관련해 “국제법 위반으로 홍콩 사무와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라며 “중국 정부는 결연히 반대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특히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와 관련해 미 군수기업인 록히드마틴을 제재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 정부도 대중 압박수위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당장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중국 국영기업을 ‘현대판 동인도회사’라고 하며 중국 당국자와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아직은 1단계 무역합의를 고리로 두 나라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적절한 수위 조절이 불가능할 경우 두 나라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 워싱턴 안팎의 시각이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