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남미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줄하향하면서 신흥국 연쇄 부도 사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천문학적인 부채에 허덕이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규모가 크지 않은 산유국들이 도미노 국가부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국채 상환 연기 결정으로 아르헨티나 정부가 한숨은 돌렸지만 잠시 상환을 유예한 것에 불과해 여전히 절벽 끝에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번 결정은 코로나19로 인한 남미국가들의 경제 충격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신흥국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더욱더 높아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만일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를 선언할 경우 코로나19 충격에 상대적으로 주변국들 역시 여파를 피해가기 힘든 만큼 줄 부도 현상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암허스트 피어폰트의 남미 담당 고정수입 책임자인 시오반 모던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국채 상환 연기로)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전망이 높아졌다”며 “부채 상환에 대한 광범위한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의 시작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인접국인 브라질에서도 코로나19 사태 확산에 따른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6일 브라질 중앙은행이 100개 민간 컨설팅 회사의 분석자료를 종합해 발표한 주례 경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주일 전의 -0.48%에서 -1.18%로 추락했다. 중앙은행의 주례 보고서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이번주까지 8주째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주 보고서에서는 성장률 전망치가 1.48%에서 -0.48%로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브라질의 코로나19 충격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나 2018년 트럭 운전사 파업에 따른 물류대란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브라질 당국이나 중앙은행보다 훨씬 더 낮은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올해 브라질의 성장률을 -1.6%로 예상했다. 브라질의 민간 연구기관인 제툴리우바르가스재단(FGV)은 -4.4%까지 낮춰 잡았다. 두 기관의 전망이 맞으면 브라질 경제는 4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늘어나는 적자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브라질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지출 확대로 재정 부담이 가중할 것에 대비해 공공 부문 임금의 2년간 동결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경기 부양을 위한 지출을 확대할 경우 올해 재정적자가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자금난으로 인한 위기감이 중남미 국가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남미 국가 14곳은 국제통화기금(IMF)에 6조원에 이르는 긴급자금을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신흥국 중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산유국은 코로나19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피치는 나이지리아의 장기 외화표시 발행자등급(IDR)을 B+에서 B로 낮췄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앙골라 등 산유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유가 하락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석유 수입이 국가 소득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리비아·나이지리아·베네수엘라와 같은 산유국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