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발 미 은행 환경
무디스, 신용등급 전망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의 저금리 정책에 의한 수익성 압박과 셰일 기업의 대규모 부실을 초래할 수 있는 저유가 환경으로 이중고에 처했다.
16일 월스트릿저널(WSJ)에 따르면 북미지역 은행들이 셰일 기업 등 에너지 회사에 빌려준 자금은 1,000억 달러에 달한다. 또 북미 석유·가스 탐사 및 생산업체들은 은행 대출과 별개로 2020∼2024년 만기가 도래하는 860억달러 상당의 회사채도 안고 있다.
지방은행들의 위험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지만 대형은행인 시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도 전체 대출의 2.1%와 3.2%가 에너지 산업에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유가로 인해 셰일 기업의 도산이 현실화하기 시작하면 미 은행권의 타격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퇴적암(셰일)층에 고압의 액체를 분사해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셰일 산업이 채산성을 가지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현재 유가는 이를 크게 밑돌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9.6% 내린 배럴당 28.70달러에 거래를 마쳐 배럴당 30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기준금리를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 내려 ‘제로금리’ 정책을 다시 동원한 연준의 저금리 정책도 반갑지만은 않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저금리로 수익성이 악화된 미국 은행들이 갑작스럽게 거액의 현금을 제공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고 월스트릿저널은 진단했다.
실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인 15일 뉴욕 증시에서 시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의 가격은 최대 20% 폭락했다.
연준의 돈풀기 정책으로 유동성은 풍부해졌지만 코로나19발 경제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무턱대고 돈을 빌려주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예컨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미국인들의 대출 갈아타기 신청이 크게 늘었지만 향후 경제 침체 시 부동산 거품 붕괴 등에 대비해야 하는 딜레마에도 처해있다. 전미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최근 한주간 차환(refinancing) 신청 접수 건수는 거의 11년 만의 최대 수준으로 늘었다.
대출 수요는 불안한 경제에 일단 현금을 확보해 대비하려는 기업 쪽에서도 크게 늘었다.
실제로 미국 산업계에선 최근 며칠 사이 회전한도대출(은행과 약정한 금액 내에서 필요할 때 돈을 꺼내 쓰는 방식) 계약을 체결했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예컨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최근 회전한도대출 약정 규모를 최대치인 25억달러로 늘렸고, 유럽 항공기 전문 리스사 에어캡(Aercap)도 40억달러 상당의 무담보 신용한도를 설정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위축되면서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결과다.
이런 상황을 맞아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16일 미국 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코로나19발 여파에 의한 자산 위험과 경영환경 압박을 거론하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는 은행 수익성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