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해협 위치 작은 섬 외국 어선 허가제 시행
프랑스 “무례하다” 반발 미래관계 협상의 시금석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공식화되자마자 프랑스와 조업 규정을 놓고 충돌했다. 겉으론 영국해협에 위치한 작은 섬이 양국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
영국이 EU와 연말까지 별다른 변화 없는 ‘전환기’를 통해 미래관계 협상을 진행하기로 해놓고 지엽적 분야에서 포문을 연만큼 협상 우위를 선점하려는 기싸움이 벌써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과 유로뉴스 등은 영국 왕실속령으로 영국해협 채널제도에 속한 건지·올더니·사르크섬 정부(건지섬 정부)가 자국 영해에서 조업을 하는 외국 어선에 대해 개별 허가제를 시행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섬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도 48㎞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건지섬 정부는 외국어선 조업을 일시 중단하고 3일부터 허가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허가제는 지난달 31일 발효된 브렉시트를 계기로 마련됐다. 이전까지는 1964년 영국 정부가 5개국과 체결한 ‘런덥어업협약’에 근거해 프랑스 저인망 어선(트롤선)들은 건지섬 주변에서 자유롭게 어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조약이 자동 만료된 만큼 프랑스 어선의 지속적인 어업권 보장을 위해 허가제를 시행한다는 게 영국의 입장이다.
반면 프랑스 측은 자국 어선들을 겨냥한 56년 만의 제재 조치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EU와의 기존 관계를 유지키로 한 11개월의 전환 기간이 있는데도 왜 벌써부터 조업을 막느냐는 비판이다. 프랑스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소니아 크리미 의원은 “허가제는 성급하고 무례한데다, 모호하기까지 한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혹평했다. 프랑스 농림부는 허가 승인기간을 가능한 짧게 만드는 방향으로 건지섬 정부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은 건지섬의 지정학적 의미를 주목하고 있다. 해역 조업 규모는 작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탓에 영국이 브렉시트 문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점유권 확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유로뉴스는 “건지섬 영유권은 노르망디와 가까운 채널제도 전체에 첨예한 이슈”라며 “어업은 주권의 상징과도 같다”고 강조했다. 채널제도는 공식적으로 영국 정부가 아닌 왕실에 속해 있지만 브렉시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건지섬 해역에서 조업하는 연간 프랑스 선박 수는 140여척(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어업 현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업 매출의 30%가 영국 영해에서 나오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건지섬 갈등의 결과가 앞으로 양국 어업협정에 미칠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EU와 영국 정부 모두 브렉시트 직후 잡음을 겪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실제 나이젤 패라지 영국 브렉시트당 대표는 “여러 면에서 어업은 브렉시트의 시금석”이라며 주도권 싸움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 양측 협상전이 작은 섬에서 막이 오른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의회에서 일한 다치안 치올로슈 전 루마니아 총리를 인용해 “특정 관점에서 브렉시트는 완성된 듯 보이지만 수많은 측면에서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