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골목 116개 점포 중 53곳서 판매
“없다고 하면 관광객들 발길 돌려서$”
업종 상관없이 인기메뉴 다 갖다 팔아
전문가“전통시장의 매력 퇴색”지적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먹거리 골목을 조사해 보니 노점을 포함한 전체 116개 점포 중 절반에 달하는 53곳에서 마약김밥을 팔고 있었다. 이 중 44년째 영업 중인 ‘모녀김밥’ 등 마약김밥 전문점 7곳과 분식집 22곳을 제외하면 24곳이 김밥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전문 음식점이었다. 빈대떡집도 16곳이나 됐다. 어찌 된 일일까.
모녀김밥 대표 유지풍(52)씨는 “2호점을 낸 2011년쯤 언론에 소개되고 입소문을 타면서 시장 곳곳에 마약김밥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 후 SNS를 통해 알려지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찾다 보니 마약김밥을 놓고 파는 음식점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보리밥 전문 노점을 운영하는 조향(61)씨는 “손님들이 언제부턴가 ‘마약김밥은 없다’고 하면 그냥 나가 버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들여놨다”면서 “광장시장에서 한 가지만 하는 집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광장시장에서 유명 원조 음식을 주변 식당들이 따라 파는 경우는 마약김밥뿐만이 아니다. 육회나 육탕탕이(육회+낙지탕탕이), 빈대떡 역시 시장 곳곳에 ‘약방의 감초’ 수준으로 널렸다. 최근 점포에 작은 수족관을 설치한 김성윤(49)씨는 “몇 년 전 중국 예능 프로그램을 우리 시장에서 찍었는데 그 뒤로 낙지탕탕이(산낙지회)를 찾는 중국 관광객이 많아져서 낙지를 시작했다”며 “손님들이 찾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노점은 순대국밥 전문이다.
물론 고객 입장에서는 이 같은 메뉴 ‘복붙(복사 붙이기)’ 덕분에 발품을 팔지 않고도 이름난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음식점에 따라 특유의 맛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전통시장만의 매력이 퇴색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광장시장을 찾는 이유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달리 점포마다 차별화된 손맛 때문인데 시장 어디서나 마약김밥을 판다면 만족도가 떨어져 일회성 방문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맛의 하향 평준화도 문제다. 마약김밥을 파는 음식점 중엔 직접 조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장에서 생산한 김밥을 납품받는 곳이 적지 않다. 일부는 손님이 찾을 때에만 옆집에서 빌려서 내놓기도 한다. 문제는 아무리 조리 과정이 간단한 음식이라 해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김밥과 원조의 맛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광장시장을 찾은 김원기(34)씨는 “마약김밥을 먹으러 자주 오는데 직접 싸 주는 단골집 외에는 별로 맛이 없다. 미리 싸서 포장해 둔 걸 주니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데 있어 소비자가 공급자보다 우위에 있게 마련인데, 공장에서 만든 음식을 공급하는 방식이 계속될 경우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약김밥을 비롯한 몇몇 유명 음식의 복붙 현상은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할 맛과 정체성으로 승부를 걸기보다 ‘온 김에 먹어나 보자’는 관광객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이런 현상은 세계 주요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유명 관광지일수록 음식이 본연의 맛보다 경험과 인증의 수단이 되는 경향이 뚜렷한데 광장시장도 비슷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조리 과정이 간단해 복제가 매우 쉽다는 점과 생존에 목맬 수밖에 없는 상인들의 현실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광장시장은 ‘마약김밥천국’으로 변해 가고 있다.
복제 메뉴로 손님을 잡아 두는 대신 자기 점포만의 음식을 고집스럽게 지켜 가는 경우도 광장시장에는 적지 않다. 45년째 육회 전문점을 운영해 온 A씨는 “마약김밥이나 다른 음식을 찾는 손님이 적지 않지만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식당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즐기는 게 맞는 것 같아 육회 관련 음식 외에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녀김밥 유 대표는 “마약김밥을 파는 집이 많이 생겼고, 심지어 ‘원조’라고 내세우는 집도 여럿이지만 ‘다 같이 오래가야 한다’는 생각에 개의치 않는다. 다만, 손님들이 ‘마약김밥 맛이 별로’라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모두 맛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박서강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