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브랜드 기업들 이틀만에 10억달러 쾌척
부의 불평등과 순수하지 못한 후원동기 등 지적
파리의 노트르담성당이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자 전 세계에서 복구 성금이 쏟아졌다. 1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억만장자들도 이어졌고 불과 이틀 만에 거의 10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이 모금됐을 정도다. 큰손 기부자 명단에는 구찌, 이브생로랑, 베르나르 등 세계적인 브랜드 기업의 오너와 CEO 등이 망라됐다. 그러자 찬사와 함께 비난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가령 이런 주장도 있다. 지난 9월 리오데자네이로에서 발생한 브라질 국립박물관 화재 때는 왜 이런 도움의 손길이 메말랐느냐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소위 ‘노란조끼’ 시위대의 분노에도 불을 붙였다. 프랑스의 경제적 불평등과 전 세계적인 부의 편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라는 게 시위대의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기부 기업들이 제 몫의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나 노트르담성당 복구를 위해 프랑스 정부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빼앗는 격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성당 복구에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려면 차라리 당장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구호단체의 음식, 셸터, 교육 비용이나 지원하라는 공격성 비난도 떠돈다.
하지만 자선사업 전문가들은 이런 반응에 별로 놀라지 않고 있다. 미국 LA에 비영리단체 버그루엔연구소를 설립한 억만장자 자선사업가 니콜라스 버그루엔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버그루엔연구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정치 및 사회적 지평을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람들은 삶의 염려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와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악하다고 비난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요. 부자들이 이런 대상에 포함돼 있는 건 분명해요. 그리고 자선사업가들도 그 연장선에 있는 거지요.”
자선사업을 비판하는 사람 중에는 현실적인 입장을 가진 부류도 있다. 이들은 자선사업가들이 정부나 민간 분야와 손을 잡고 함께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이나 기업이 독자적으로 자선이나 후원을 나서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남을 돕는 자선사업 그 자체를 인정하고 친창하지는 않고, 재화의 효율성을 최고의 방법으로 극대화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쯤에야 다른 사람들의 이타주의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가요?”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인 JP모건에서 자선사업 고문으로 일하는 닉 테데스코의 말이다.
저명 인사의 기부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된다면 이들은 당연히 ‘큰 선물’을 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부에 나섰다가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하는 사람도 나올 터이고,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선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평판을 바꾸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결국 불평등한 부의 분배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선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효과적 자선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필 부커넌은 “부의 불평등과 일부 부자의 추한 행태가 큰 우려를 낳고 있고, 또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점을 우려할 수 밖에 없어요. 자선사업가들이 세금을 공제받으려 기부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논리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거액의 기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보호하려는 의도로만 자선에 동참한다고 믿지 않아요.”
그는 ‘로버트 우드 잔슨 파운데이션’을 예로 들었다. 911 응급 시스템과 간호 분야 등에 거액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 환원을 이루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프릿처 가문이 후원하고 있는 ‘리브라 파운데이션’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을 돌보는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커넌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와 민간 부문 그리고 자선 부문이라는 세 요소가 어우러져 각각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며 “세 부문이 모두 중요한 중심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한편 테데스코는 다른 우려를 갖고 있다. 자선사업을 통해 이미 많은 돈이 동원됐지만 정작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트르담 경우에는 아무 일이 없었으면 잠들어 있을 기부 자산이 수도 꼭지를 튼 거지요. 도대체 자선사업에 쓰일 재화는 왜 그리 게으른 것일까요? 비영리단체는 기부자를 설득하고 자극할 방도를 알지 못해요.”
그는 자선사업가들이 비판을 불쾌하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기꺼이 지적을 수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궁극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해결책과 방안을 찾을 길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기껏 좋은 일을 하고도 비난을 감수하고 싶지 않으면 익명의 기부라는 선택도 있다. 투자회사인 베스머트러스트의 자선사업 담당 캐롤라인 핫킨슨은 “부유한 고객들은 유한책임회사를 통해 기부에 사용할 자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회사는 투자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거액의 기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며 자선사업에 투입하는데 상당한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그냥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서도 기부나 자선사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익명의 기부가 갖는 부정적 요소도 존재한다.
기부금의 투명성 문제도 그중의 하나다. 기부금을 합법적으로 감사하려 해도 출처가 분명치 않으니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애넌드 기리다라다스는 ‘승자 독식: 세상을 바꾸는 엘리트의 제스처 게임’이라는 책의 저자다. 그는 노트르담 기부에 대한 비판을 건강한 담론이라고 주장한다. 또 패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30억 달러를 질병 치료에 쓸 계획이라고 밝힌 사실을 예로 들면서, 사회가 흥분하지 말고 좀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좀처럼 보기 드문 거창한 단체를 세우는 대신 자선 기금을 직접 기부하는 걸 보고 싶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억만장자 자선사업가인 버그루엔은 민주주의가 보다 잘 돌아가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자선사엄가들은 사회를 위해 아주 많은 재산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는 이쪽에서도 그 자체의 역할이 있죠. 그러나 빌 게이츠는 민간 부문이 책임질 수준을 뛰어넘어 나름 더 많은 리스크를 감당한 것일 수 있습니다. 국가와는 또 다른 종류의 리스크를 더 짊어진 셈인 겁니다. 전반적으로 미국이 혜택을 받는 거죠.”
프랑스 파리에서 ‘노란조끼’ 시위대가 노트르담성당 화재 이후 성당 복구를 위한 기업들의 거액 기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Jeff J Mitchell/Getty Images>
니콜라스 버그루엔은 억만장자 자선사업가로 버그루엔연구소를 세우고 건강한 민주주주 사회를 이루는데 노력하고 있다. <Krista Schlueter for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