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타이거 우즈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던가.
‘돌아온 황제’ 타이거 우즈의 포효를 직접 듣는 순간,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진정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4만여명의 갤러리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인의 장막을 뚫고 18번 홀 언덕을 늠름하게 걸어오는 타이거의 모습은 황제의 부활을 알리는 개선장군의 모습이었으며 1932년 개장 이래 60여년 동안 흑인과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보수의 오거스타에 대한 무언의 저항처럼 보였다.
필자로서는 지난 30여년 골프투어의 또 다른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한국에서 온 4명의 골프투어 고객의 요청으로 우연히 시작된 오거스타 투어는 광고가 나가자 마자 무려 12명이 신청을 해 입장권 예매와 호텔 예약으로 진땀을 흘린 투어였다.
대회 3개월전이었지만 오거스타 주변의 호텔은 이미 예약이 만료됐고 2-3시간 떨어진 호텔도 방이 몇 개밖에 남지 않을 정도였다. 투어 협력업체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오거스타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의 호텔에 예약을 했다.
마스터스의 감동
오거스타에 도착하니 20만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가 세계에서 몰려온 25만명의 관광객들로 술렁이고 북적됐다. 가는 곳마다 마스터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처음 만난 관광객들도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해 보였다. 온통 마스터스를 위해 만들어진 도시처럼 느껴졌다. 주민들은 마스터스가 열리는 4월 둘째주를 1년의 ‘열세번째(13월) 달’이라고 한다.
오거스타 마지막 날의 날씨가 오후 3시부터 번개와 천둥이 예보됐다. 이로인해 티타임이 1시간 앞당겨져 우리 일행은 6시에 호텔을 나섰다.
5분밖에 안되는 거리라 일찌감치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거리는 이미 오거스타를 향하는 차량의 홍수로 꽉 차 있었다. 40분이 결려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왔다.
오거스타 주차장은 풋볼 구장처럼 넓고 정돈됐으며 무료였다. 대부분의 PGA 대회에서 주차요금을 받는 것과 달랐다.
게이트 앞에는 체크 인을 위해 끝없이 줄이 이어졌다. 입구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됐고 셀폰이나 큰 가방은 갖고 들어가지 못했다. 지갑 크기 정도의 작은 물건만 허용됐다. 십수년전에 필리핀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이 입장했는데 아들이 본인도 모르게 가방에 셀폰을 넣고 들어갔다가 적발돼 영원히 오거스타 입장이 금지됐다고 한다. 음식의 반입은 절대 금지다.
셀폰이 허용되지 않는 대회는 메이저 대회 중 마스터스가 유일하다. 기자들에게는 미디어 센터내에서만 허용되며 선수들도 락커에서만 셀폰 사용이 허용된다.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출입구를 지나니 오론쪽에 대형 기념품 샵이 들어서 있는데 기념품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줄잡아 100미터는 돼 보였다. 계산대만 20군데가 설치돼 있었다. 기념품의 가격은 마스터스 로고가 찍힌 모자가 26달러로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우리 일행들도 줄을 서서 모자와 티셔츠, 로고 볼 등을 기념으로 샀다.
입구에서 부여받은 뱃지는 코스에 있는 동안 목에 걸고 다녀야하는데 규칙을 위반하면 사안에 따라 경고, 퇴장 또는 영원히 오거스타의 출입을 금지하는 벌칙을 받게 된다.
오거스타에 들어서는 순간 ‘세계 모든 골퍼들이 한번쯤 밟아보고 싶은 꿈의 코스 오거스타에 드디어 왔다’는 감동으로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클럽하우스는 생각보다 단촐했다. 흰색의 아담한 단층 건물이었다.
100여년전 처음 건축한 클럽 하우스를 전통과 역사를 살리기 위해 허물지 않고 몇 번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코스는 웅장했고 코스 곳곳이 상당한 경사가 진 언덕 코스였다. 오거스타는 골프의 전설 보비 존스가 설계했는데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자는 보비 존스의 의지대로 나무와 헤저드, 언덕 등이 거의 대부분 자연그대로였다.
높이 30여미터가 넘는 큰 소나무들이 코스를 따라 줄지어 서있고 언덕 곳곳에 핑크 빛의 철쭉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그림으로 봐 왔던 오거스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감동은 더없이 기뻤다.
시간이 지나자 수만여명의 갤러리들이 구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색으로 단장한 인운(人雲·사람의 구름)이었다. 그동안 많은 대회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많은 갤러리들은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갤러리들이 움직이는데도 골프코스는 도서관 보다 더 조용했다. 적막감마저 들었다.
오거스타측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대회 3개월전부터 플레이를 금지시키고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갤러리들의 셀폰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같은 철저한 관리로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선수는 물론 마스터스에 오는 갤러리들도 최고 수준의 갤러리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역시 오거스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과 대회가 끝난 후 클럽하우스 앞 연습그린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개별 관광을 위해 헤어졌다. 나는 제일먼저 말로만 들었던 ‘아멘 코너’ 11, 12, 13번 홀로 발길을 옮겼다. ‘오직 신만이 승자를 안다’는 오거스타의 아멘 코너.
코스에서 만난 오거스타 직원에게 왜 아멘 코스냐고 물었다니 “그동안 이 코스를 지나면서 한번도 순위가 안 바뀐 적이 없다. 선수들은 이 코스에 들어서면 소중한 기도를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귀띰했다.
11번 홀 티박스에서 본 페어웨이는 선수들의 심장마저 멎게 할 정도로 답답했다. 30여미터 높이의 높은 소나무 숲을 뚫고 티샷을 날려야하고 공이 떨어지는 지점의 페어웨이는 20여미터도 채 안되는 것 같았다. 그린 왼쪽엔 헤저드 오른쪽에 벙커가 보였다. 티박스에 서면 저절로 기도가 나올 것 같았다.
12번 홀 파3 158야드, 오거스타 코스에서 가장 짧은 홀이지만 가장 까다로운 홀임을 실감케했다. 거리는 짧지만 나무위로 부는 바람, 그린 앞 가파른 경사로 이어지는 워터 헤저드 등을 계산하지 않고서는 내로라하는 프로 선수들도 공략하기 힘든 홀이다. 결국 이날 2타차 선두를 지켜오던 프란시스코 몰리나리를 침몰시킨 야속한 홀이다.
티박스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 오거스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미리 자리를 잡아 진을 친다고 한다.
13번 홀 파5는 거리는 짧지만 역시 그린 앞 실개천과 그린 뒤 벙커가 있어 공략하기가 까다로운 홀이었다. 더구나 폭은 넓지만 높이가 짧은 땅콩 모양의 길죽한 그린은 세컨 온을 노리는 선수들을 주눅들게 하는 곳이었다.
오거스타의 대명사는 ‘유리처럼 빠른 그린’이라고 한다. 최경주는 오거스타의 그린을 ‘당구대 그린’이라고 표현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그린이 급격한 경사 그린이라 자칫 방심했다간 3퍼트를 각오해야한다.
오거스타의 또 다른 특징은 코스 어디에도 광고 전광판이 없는 것이었다. 코스 어디에도 상업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거스타는 전 세계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는 4만여명의 페이트런(후원자)과 TV중계료, AT&T 등 오직 4개 대기업의 광고로 경비를 충당한다고 한다.
이로인해 마스터스에 오는 갤러리들도 스스로 마스터스 후원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멘코스를 막 돌아서는데 갑자기 탄식과 함성이 들려왔다. 12번 홀에서 프란시스코 몰리나리의 공이 물에 빠지고 타이거는 온 그린을 하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갤러리들이 타이거를 따랐다. 타이거가 지나가면 라운드를 하던 선수들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곤 했다. 모두가 타이거를 향해 기대와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흥분의 하루를 마친 일행들은 마스터스의 감동을 이렇게 적었다.
“마스터스 페이트런(후원자)의 가입을 알아봐 달다. 마스터스 갤러리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
“꿈의 코스를 돌았다. 이제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다”
“내년 마스터스를 예약해 달라. 4일의 경기 모두를 보고 싶다”
“마스터스를 직접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엘리트 투어에 감사한다”
우리 16명의 일행은 대회를 마친 후 오거스타에서 가장 스테이크를 잘 한다는 식당에서 저마다 관전기를 나누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자연을 그대로 살린 코스와 티끌을 찾아 볼 수 없는 잘 관리된 페어웨이는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의 장점이다.
<한국일보 제공>
유명 골프코스 설계가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와 함께한 빌리 장 엘리트 투어 대표.
오거스타 클럽 인근에 존 댈리 선수가 밴에 각종 기념품을 진열해 놓고 사인을 해주며 판매하고 있다. 일행 중 장덕희씨가 기념품을 사고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의 주차장 전경. 파킹은 무료이며 넓고 높은 소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