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 3종을 모두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해마다 유행 바이러스 종을 예측해 독감 백신을 제조하던 제약업계 관행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20일(현지시간) 과학 전문매체 ‘사이언스 얼러트(www.sciencealert.com)’에 따르면 호주 멜버른 대학의 캐서린 케지에르스카 교수팀이 이번에 찾아낸 건 독감 바이러스 3종에 모두 맞서 싸우는 ‘CD8+’라는 T세포다.
종종 ‘킬러세포’로도 불리는 CD8+ T세포는 인체의 관문을 지키는 치안부대처럼 외부에서 침입하는 위협요소에 대응한다.
사실 CD8+ T세포의 특별한 잠재성이 처음 알려진 건 2013년이다. 당시 유행한 H7N9(일명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감염 실태를 분석한 결과, 이 면역세포에 대한 반응도가 높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쉽게 회복했다.
이번에 연구팀은 질량분석 기법으로 6만7,000개의 독감 바이러스 서열을 샅샅이 뒤져, 바이러스 3종이 공유하는 펩타이드(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 분자로 이뤄진 화학물질)나 화학결합(chemical bond)이 존재하는지 탐색했다.
그러다가 조합이 특이한 항원 결정인자들이, 일종의 ‘깃발’처럼 바이러스 침입을 CD8+ T세포에 알리고 말살 명령도 내린다는 걸 알아냈다. 독감 바이러스 3종의 공유 부위와 인체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변종을 찾아낸 것이다.
이 결과를 생쥐에 적용해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는지 봤더니, 바이러스 감염과 염증 수위가 현저히 낮아졌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하지만 모든 독감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통합형(all-in-one) 백신을 개발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예를 들면 완벽한 형태의 CD8+ T세포를 가진 사람은 현존 세계인구의 약 54%에 불과하다는 게 연구팀의 추산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A·B·C 3종이 있는데 사람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건 주로 A형과 B형이다. 드물게는 C형도 인간에 감염되지만, 증상은 심하지 않다.
제약업계는 해마다 변종이 유행할 가능성에 대비해 이들 3종을 각각 다른 비율로 배합해 백신을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변종 간의 변화가 워낙 빠르고 빈번해 일률적인 백신 효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보고서의 수석저자를 맡은 케지에르스카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백신으로 개발할 잠재성이 어느 정돈지 확인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과학 저널 ‘네이처 면역학(Nature Immunology)’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