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초동맥질환·말초신경병 등
혈관 막히거나 신경 눌린 탓
단순 수족냉증 오인하기 쉬워
방치땐 조직괴사 절단 가능성
무릎·팔꿈치 통증 번지기 전
전문의 정확한 진단 받아야
# 추위를 많이 타는 40대 후반 여성 K씨. 따뜻한 실내에서도 종종 손발이 시린 느낌을 받고는 했는데 최근에는 손발이 자주 저리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수족냉증(?) 진단을 받았다.
# 평상시에도 손발이 차가워 고민인 50대 초반 남성 L씨는 겨울에는 아프기까지 하다. 악수라도 하게 되면 통증 때문에 상대방이 깜짝 놀랄 정도로 움찔해서 대인관계까지 꺼려질 정도다.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혈관이 수축돼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여름보다 수족냉증 증상이 심해진다. 수족냉증 환자들은 적외선 온도계로 냉증 부위의 체온을 측정해보면 다른 부위에 비해 1.5∼2도가 낮다. 저리는 증상이 나타나고 소화불량·설사·만성피로·식욕저하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사춘기·갱년기 여성과 출산 후 산모 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추위 탓으로 돌리고 방치하면 심한 경우 괴사로 진행돼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골초 남성, 류머티즘성관절염 환자 말초혈관 잘 막혀
수족냉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동맥경화 등으로 인한 말초동맥 등 혈액순환장애, 말초신경병이 대표적이다.
말초동맥질환은 동맥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막혀서 발생하는데 동맥경화증이 주된 원인이다. 혈압이 높으면 혈관의 섬유화·노화로 탄력이 떨어지고 혈관이 두꺼워지면서 좁아진다. 방치하면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기 쉬워진다. 혈액에 끈적한 포도당이 많은 당뇨병, 지방질이 많은 이상지질혈증은 동맥 안쪽 벽에 지방혹(죽종)이 생길 위험이 일반인의 네 배에 이른다. 뇌·심장·다리 혈관 등이 좁아지거나 지방혹이 터져 혈관을 막으면서 뇌졸중·심근경색증·협심증·말초동맥폐쇄질환 같은 합병증으로 반신마비가 오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혈관의 일부분만 좁아져 있을 때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탓에 증세가 느껴질 정도가 되면 대부분 합병증이 생긴 경우다.
박경석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계속 손발이 차다면,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이 있는 사람에게 수족냉증·손발저림증이 동반된다면 꼭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말초혈액순환장애의 대표적 질환으로는 버거병(버거씨병)과 레이노 현상이 있다. 버거병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 젊은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말초혈관이 막혀 손발이 괴사되며 심할 경우 절단해야 하는 무서운 병이다.
레이노 현상은 찬 곳에 노출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초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해 손발가락이 하얗게 또는 파래지거나 자주색으로 변한다. 수족냉증과 함께 손발 저림·통증이 동반될 수 있다. 류머티즘성관절염·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자에게 흔히 나타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의 10% 정도에서 발생하는 드물지 않은 증상이며 심한 경우 합병증으로 손발가락 피부궤양·괴사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팔다리의 말초혈관 혈액순환장애가 심해지면 손목·발등과 오금(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의 맥박이 약해지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말초신경까지 손상돼 저림·감각감소가 동반되고 주변 조직이 괴사할 수 있어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일정 거리를 걸으면 장딴지나 허벅지에 통증이 오고 휴식을 취하면 나아지는 하지파행증이 생기기도 한다. 병변 부위 이하 동맥의 맥박소실, 피부가 창백하고 차갑고 거칠고 털이 잘 자라지 못하며 발톱이 두꺼워지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말초신경병·척추관협착증 등 신경장애도 주요 원인
갑상선 기능 저하, 스트레스가 수족냉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흡연·음주·스트레스는 수족냉증을 악화시키므로 술·담배를 끊고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혈당·혈압을 잘 관리하고 식습관을 개선하고 적당한 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다. 안형준 경희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말초동맥질환을 방치하면 통증이 생기고 상처가 쉽게 낫지 않고 괴사할 수 있으며 심장·뇌혈관질환이 발병할 수 있으므로 정기 검진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혈관이 좁아지고 막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시술이나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우선 위험인자를 없애고 약물치료를 한다. 안 교수는 “약물치료 효과가 없다면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혈관 재개통술)을, 좁아진 부위가 짧다면 풍선확장술을, 심하다면 스텐트(금속망)를 넣어주거나 인조혈관, 본인의 다른 부위 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우회술)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수족냉증은 혈액순환장애뿐만 아니라 말초신경병, 척추관협착증, 척추디스크병(추간판탈출증), 손목굴(터널)증후군 등으로 인한 신경장애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수족냉증과 손발 저림, 감각이 무뎌진 느낌이 동반되면 의심할 수 있다. 손발 저림 등이 수족냉증보다 심하거나 빈번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초신경병은 대개 당뇨병, 만성콩팥기능부전(신부전) 등의 합병증이나 약물 부작용으로 생긴다. 증상은 보통 발끝에서 시작돼 발목·무릎까지 번지거나 손끝에서 시작해 팔꿈치 쪽으로 퍼져나간다. 척추관협착증으로 인해 발과 다리로 가는 신경이 눌려 다리 쪽이 시리고 저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신경과 전문의 진료, 말초신경장애를 확인하는 신경전도·근전도 검사 등을 받을 필요가 있다. <임웅재 기자>
수족냉증 환자의 발을 적외선으로 촬영한 모습. 발끝(보라색)의 온도가 다른 부위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사진제공=자생한방병원>
말초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해 손이 하얗게 변한(레이노 현상) 손(사진 왼쪽)과 버거씨병 환자의 발. <사진제공=분당서울대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