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경 필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으니, 이 글은 비교적 생생한 추억담이자, 여행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스페인어로 ‘에스파냐’라고도 부르는 스페인은 ‘플라멩코’ ‘투우’ ‘건축가 가우디’의 나라다. 예로부터 로마의 지배와 게르만의 침입,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스페인의 문화유산은 지중해에 내리쬐는 햇살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술 혼과 태양의 도시 ‘바르셀로나’
가장 먼저 찾을 바르셀로나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다. 관광 명소가 밀집한 고딕 지구에서는 13~15세기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카테드랄 앞 새 광장을 중심으로 좁은 골목이 이어져 있는데 골목 양쪽으로 부티크와 카페, 레스토랑 등도 오밀조밀하게 밀집해 있다.
람블라스 거리는 고딕지구와 카탈루냐 광장에서부터 뻗어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산 조세프 시장을 지나고 나면 유서 깊은 `카페 오페라`를 만나게 된다. 람블라스 거리의 종점은 콜럼버스 탑이 위치한 포르탈 데 라 파우 광장. 탑이 무척 높아 어디서든 한눈에 들어온다. 탑이 있는 광장에서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해 질 무렵 포트벨 항구에서 바라보는 탑과 광장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다른 말로는 ‘가우디 투어’ ‘건축 기행’이라고 한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 드라사네스역에서부터 시작해 레이알 광장, 구엘 저택을 지나 가우디 건축을 둘러볼 수 있다. 그중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건축한 고품격 맨션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가우디 건축물이 그러하듯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가우디 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구엘 공원과 가우디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 북쪽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데 구석구석 가우디의 손길이 닿아 있다. 부서진 타일로 에워싼 벤치와 도마뱀 분수대 등 특이하고 재미있는 건축물 덕분에 동화 속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가우디의 후원자인 구엘 백작과 가우디의 계획으로 전원 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설계된 이곳은 이후 본래의 취지와는 멀어지게 됐지만 여전히 가우디의 위대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톨릭 성당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누구나 인정하는 가우디의 역작으로 1882년 이래 지금까지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가우디 사후 100주기인 2026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멀리서보면 동화나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딘가 기괴한 인상을 남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4개의 첨탑과 옥수수같이 생긴 외관은 그 어디서도 본 적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모습이다. 지구 방방곡곡을 누빈 필자조차 가우디의 작품 앞에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대항해 시대 영광 품은 ‘포르투갈’
스페인이 아무리 볼거리가 많다 해도 먼 길을 떠나온 여정인 만큼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까지 항공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포르투갈은 대양항해를 주도한 나라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과 인도항로를 개척하고, 15세기 지리상의 발견을 주도한 이는 ‘해양왕’ 엔리케 왕자다. 엔리케는 학자와 선원, 조선기술자를 모아 해양연구소와 선원학교, 조선소를 세우는 등 바다개척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한 번도 왕위에 오른 적은 없지만 ‘해양왕’으로 길이 기억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통해 포르투갈은 인도양의 향신료 무역과 동아시아와의 교역망을 장악하고, 막대한 국부를 축적하며 유럽 굴지의 상업항구로 번영을 누렸다.
리스본 서쪽 끝에 위치한 벨렘 지구는 포르투갈 전성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관광지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렘탑, 발견 기념탑 등이 강변을 따라 줄지어 있다. 16세기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일주를 기념하는 벨렘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리스본의 또다른 명물은 바로 에그타르트다. 포르투갈어로 ‘나타’라 부르는 에그타르트는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180여년 대를 이어 전통을 지켜온 원조집을 적극 추천한다. 바삭바삭한 페스트리 사이로 말랑말랑하고 폭신한 에그 크림이 어우러져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달달한 맛이 참 감미롭다. 따뜻한 커피를 곁들이면 앉은 자리에서 거뜬히 몇 개는 해치울 수 있는 마성의 맛이다. 오직 에그타르트를 맛보기 위해 리스본을 찾는 여행자가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에그타르트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녀들이 처음 만들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수도원에서 옷깃에 풀을 먹일 때 계란 흰자를 사용했는데, 이때 버려지는 계란 노른자를 이용해 만든 파이가 에그 타르트의 시초다. 이후 그 비법이 전해지며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그타르트가 됐다.
파티마는 포르투갈 산타렝주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이 연간 400만명 이상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드는 이유는 성모마리아의 발현지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1917년 5월부터 그해 10월까지 매달 13일에 3명의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파티마의 기적`이 일어났으며 이후 레이리아 주교가 그 신빙성을 인정해 성지로 지정하기도 했다.
까보다로까는 유럽의 땅끝마을이다.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Camoes)의 명언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는 글귀가 십자가 돌탑에 새겨져 있다. 깎아지르는 절벽 아래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하염없이 부서지고, 거기서부터 대서양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높이가 150m에 달하는 절벽은 언뜻 보기에도 아찔하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연
이사벨라 여왕과 콜럼버스
15세기 스페인은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왕국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스페인을 기독교 왕국으로 통일한 이는 해양왕 엔리케의 이복동생인 이사벨라 여왕이었다. 이사벨라의 통일은 스페인이 세계 대국으로 성장하는 시발점이 됐다.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라는 같은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후원이라는 또 하나의 위업을 달성했다. 스페인으로 건너와 도움을 청한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흔쾌히 지원함으로써 신대륙 발견이라는 세계사를 써냈다.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이 발견됨으로써 세계지도는 완성되었고, 유럽은 인류사에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배의 서막을 열었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개척한 콜롬버스의 유해는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함께 세계 3대 사원으로 손꼽히는 세비야 대성당은 가톨릭 성전으로 분류되지만, 본래는 이슬람 왕조 아래에 있던 12세기에 이슬람 사원으로 축조되었다가 가톨릭 성당으로 변모했다. 모스크탑으로 지어진 히랄다의 탑 위에 성모마리아상이 있게 된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세비야는 또한 집시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 하다. 집시들의 한과 설움이 담긴 플라멩코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플라멩코는 애절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기타 반주, 숨돌릴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정열적인 풋스텝과 엇박자의 박수 소리에 보는 이들은 황홀경에 빠진다.
세비야의 뒤를 이어 찾게 되는 미하스는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기와 지붕을 얹은 하얀마을이다. 말라가주 남부 해안에 위치하며, 안달루시아 전통 양식의 주택이 산 기슭부터 중턱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안달루시아의 에센스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스페인의 마지막 목적지는 수도 마드리드다. 마드리드는 광장 도시이자 미술관 도시이면서 궁전 도시라 할 수 있겠다.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식 왕궁 중 하나인 마드리드 왕궁, 대성당, 프라도미술관 등이 주요 랜드마크인데, 특히 광장이 많다. 마요르 광장, 스페인 광장, 시벨레스 광장, 솔 광장은 전세계 여행객들이 마드리드에 오면 한번씩 들르는 곳이다. 세계 3대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피카소, 달리, 고야, 벨라스케스 등 내로라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여행에서 필자를 감탄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스페인 국민들이었다. 프라도 박물관을 비롯한 유명 박물관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대부분 자국민들이다. 곳곳의 널찍한 광장에서도 수많은 예술가와 공연자들이 예술을 온몸으로 마음껏 표현하고 있었다. 수많은 예술가를 탄생시킨 스페인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세계가 바르셀로나 곳곳에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