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 받다가 체포
판사 “막을 권한 없어”
트럼프 행정부의 서슬 퍼런 이민단속 칼날에 금기는 사라졌고, 성역은 무너졌다. 이민당국이 소송이 진행 중인 법원 재판정에서 불법체류 이민자를 체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민자 커뮤니티가 경악하고 있다.
지역매체 ‘새크라멘토 비’에 따르면, 지난 22일 새크라멘토 수피리어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던 불법체류 이민자가 재판정에 들어온 이민단속요원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체포됐다. 판사가 지켜보고 있는 법원 재판정 내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가 이민당국에 체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체포된 이민자는 요바니 온티베로스-체브레로스로 판매목적 마약을 소지한 혐의로 기소돼 인정심문을 받고 있는 있는 중이었다.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민단속 요원들이 재판정에 나타나자 변호인은 판사에게 보호를 요청했지만 판사도 이민 당국의 체포를 막지 못했다. 체브레로스는 전날 11만 5,000달러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이날 인정심문을 위해 재판정에 출석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찰스 파체코 변호사는 “로렌스 브라운 판사에게 피고 보호를 요청해 앞서 다른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체브레로스가 체포되지 않았지만, 다른 심리들이 끝나자 브라운 판사가 체브레로스의 체포를 용인했다”며 “판사는 당시 재판정에서 아무런 힘이 없어 보였지만 당황한 듯 보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진행 중이던 재판정에서 피고가 연방기관에 체포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데 대해 브라운 판사는 “판사는 합법적인 체포영장이 집행되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며 “ICE 요원들의 (체브레로스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ICE측도 “연방판사가 범죄자에게 발부한 체포영장을 집행한 것”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이민단속에서 성역이나 금기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새크라멘토 공익변호사실의 캐서린 칼슨 변호사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그날 ICE 요원들은 마치 법정심리를 방해하려는 사람들로 보였다. 어떤 이민자가 법원에 출석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간 학교나 법원, 교회와 같은 장소에서의 이민단속은 금기시되어 왔고, 이민당국도 이들 장소에서는 이민단속을 자제해왔다.
앞서 지난해 타니 칸틸-사카우에 캘리포니아 주대법원장은 연방 법무부 장관과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법원이나 법원 주변에서 이민단속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지만 갈수록 거세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단속 행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17일 프레스노 법원에서도 밀입국 전력 이민자가 재판을 기다리다 이민당국에 체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