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배우, 감독들 예의주시
영어하는 아시안 배우 적고
싱가포르 장소 섭외 까다로워
영화 제작에 어려움 겪어
엄청나게 부자 아시안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Crazy Rich Asians)는 할리웃 로맨틱 코미디의 온갖 장치들을 다 갖춘 영화이다. 사랑에 빠진 미모의 남녀 주인공들, 근사한 로케이션 그리고 이들의 결합을 반대하는 가족 등.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영어로 된 아시안 일색의 할리웃 현대물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순히 기분 좋고 달달한 대형 스크린 판타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할리웃에서 아시안 영화 제작의 새로운 문을 여는 분수령이 될 수가 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가 박스오피스 흥행에 성공하면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들 그리고 영화제작자들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맞을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여전히 비백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시점에 아시안 영화의 성공은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개봉 시점을 여름 대목에 배정하며 홍보 마케팅도 적극 펼치는 등 일대 모험을 한 워너 브라더스에게도 큰 승리가 될 것이다.
존 추 감독은 “오프닝 주말에 관객들이 밀려든다면 영화업계에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시안 영화가 비즈니스가 된다는 메시지이다.
15일 개봉된 이 영화는 제임스 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여주인공인 중국계 경제학 교수가 자기 애인이 싱가포르의 거부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제작진은 개봉 첫 주말 2,9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을 기대한다. 한편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그 기대를 넘어설 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제까지 영화 리뷰가 대단히 좋고, 내 이야기 같은 친근함이 있으며 문화적 배경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영화사들이 회사 중역들은 물론 출연배우 선정에서 유색인종에 너무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지는 오래 되었다. ‘블랙 팬더’ ‘걸스 트립’ ‘블랙클랜스맨’ 등 비백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계속 증명되었음에도 불구, 지난 10년 간 다양성 측면에서 거의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USC 아넨버그 포함 이니셔티브의 지난 7월 연구 결과이다. ‘알로하’나 ‘고스트 인 더 셸’ 같은 영화에서 백인을 주인공으로 기용한 데 대해 아시안 관객들은 특히 심하게 영화사들을 질타해왔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를 제작한 니나 제이콥슨과 브래드 심슨이 콴의 소설을 보고 뭔가 느낌을 받은 것은 2013년 출판 당시였다. 이들은 인디 영화 제작자인 존 피노티와 팀을 이루었다. 피토티는 아시안 시장을 겨냥한 제작사, 아이반호 픽쳐스를 막 설립한 참이었다. 아이반호의 모기업인 SK 글로벌이 투자자로 영화에 참여했다. 중국의 스타라이트 컬쳐도 후원했다.
제작자들은 처음부터 중국 시장 대신 넓은 시장을 겨냥했다. 소설의 내용이 로맨스와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으니 폭넓게 어필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싱가포르의 부유한 풍광에 호화로운 저택과 관광지들을 섞어 넣으면 빅 스크린에 잘 맞아떨어지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영화는 미국 개봉에 이어 아시아 국가들 등 국제 시장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박스오피스 시장인 중국에서는 아직 개봉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 영화의 문화적 주제와 아시안 출연진들을 보면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가능해보인다. ‘와호장룡’에 출연한 말레이시아 영화배우 미셸 여는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가 메이저 영화사의 지원을 받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설사 지원을 받는다 해도 진행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이 할리웃이다. 중간에 더 큰 프로젝트들이 나타나 사라질 수도 있고, 흐지부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피노티는 콴의 소설에 대해 업계 지인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모두 아시안들이 나오는 내용이니 영화사들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그 지인은 말했다.
“백인 여자 스타가 그 역을 할 수도 없을 테니”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피노티는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이거야 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제작자들은 아시아 거부들의 독특한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싱가포르와 홍콩으로 날아가서 그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부유한 상속자들과 어울려 프라이빗 클럽 만찬에 참석하는 등이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 제작이 추진되던 당시 존 추 감독은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자신의 경험들을 접목시킬 영화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중국으로 가서 영화를 만들 생각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의 내용은 자신이 어린 시절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를 상기시키면서 “잠재적 보편성을 보았다. 내 이야기를 끼어 넣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 그는 말했다.
한편 영화 제작이 추진되던 2016년 할리웃에서는 아카데미의 백인일색을 비판하는 #OscarsSoWhite 운동이 뜨거웠다. 영화사들은 백인들 이야기가 아닌 영화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때 제작진이 아시안 영화를 들고 나온 것이었다.
추 감독이 싱가포르 풍광들 그리고 친숙한 노래들을 아시안 언어로 소개하면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자 워너 브라더스는 환호했다. 스트리밍 거대기업 넥플릭스가 상당한 금액을 미리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제작자들은 워너 브라더스를 택했다. 대형 극장 개봉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 제작은 쉽지 않았다. 우선 할리웃에 영어를 하는 아시안이나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가 너무 부족했다. 추 감독은 밴쿠버, 베이징, 싱가포르 홍콩 등지의 캐스팅 디렉터들을 총 동원해 배우 찾기에 나섰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남자 주인공 헨리 골딩으로 그는 TV 프로그램 호스트이지만 연기 경험은 전무 했다.
다음은 규제 심한 싱가포르에서 촬영을 하는 어려움이었다. 피노티는 정부관리들과의 인맥을 동원해 웅장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자연공원 그리고 거대한 카지노 리조트인 마리나 베이 샌즈 등 주요 로케이션 장소들을 잡을 수 있었다.
제작진은 싱가포르를 아주 멋지게 묘사한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 관리들을 설득시켜야 했다. 영화에서 결혼식 리셉션 장으로 쓰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섭외하는 데는 무려 4개월이 걸렸다고 피노티는 말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상황에서도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소들은 아직 섭외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화 홍보는 아시안 관객들에 맞추면서도 보다 폭넓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출연진은 그룹으로 나눠서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마이애미, 보스턴 등지의 홍보 행사들에 참가했다. 350회 이상 진행된 특별 시사회 티켓은 신속히 팔려나갔다.
이 영화의 목적은 앞으로 더 많은 주류 영화들이 아시안 이야기를 담아가도록 길을 내는 것이라고 제작진은 말한다. 피노티와 추는 최근 홍수로 동굴에 갇혔다 구조된 타이 유소년 축구선수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막 시작했다.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아시안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는 중이라고 피노티는 말한다.
<LA타임스 - 본보 특약>
거의 모든 배우가 아시아인 아시안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의 한 장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아시안 배우들과 감독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