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 사상 최근 70년 비슷하지만
여성지위 향상 등 사회적 변화 딸 인기
아들 선호사상은 세계적인 추세다. 물론 미국의 부모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계집애에 대한 편견이 줄어든 반면 사내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커진 결과라는 풀이다. 1941년부터 2011년 사이에 걸쳐 총 10차례 실시된 갤럽의 관련 조사에서 미국인 부모들의 대답은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자녀를 단 한명만 둘 수 있다면 아들과 딸 가운데 어느 쪽을 갖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40%가 아들, 28%가 딸이라고 답했다. (나머지는 어느 쪽이건 상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연구는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으로 미국의 부모가 선호하는 자녀의 성이 무엇인지 측정했고, 그 결과 수면 아래서 꿈틀대는 변화추세를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과거의 경우 주로 아들을 갖지 못한 커플이 출산을 거듭하는 경향을 보인데 비해 요즘은 정반대로 아들만 둔 커플이 임신과 출산을 이어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처럼 뒤바뀐 트렌드야말로 남아선호라는 기본틀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 연구진이 제시한 새로운 해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입양과 인공임신 시술에서도 일반적으로 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1세대와 2세대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성차별이 심하고 여성인력의 노동참여도가 낮은 국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일반적으로 딸보다 아들을 귀히 여긴다. 아들에게 가문의 대를 잇고, 늙은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지워지는 문화권출신의 이민자들이 사내아이를 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는 지난 40여 년 동안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아직도 뿌리 깊은 성불평등과 성차별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충분한 보상이 따르는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고, 가정에서의 발언권도 커졌다.
남녀 대학졸업자들의 비율도 이미 역전된 지 오래다. 대학졸업장을 획득하지 못한 남성은 근력보다 두뇌에 가치를 두는 현대 노동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총기참사나 성폭력과 같은 강력사건의 범인은 거의 예외 없이 10대 사내아이거나 남성 일색이다. 이 역시 “사내 녀석은 애물단지”라는 편견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결국 남아선호사상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사내아이들에 대한 집단적 편견이 점차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기 자신의 성을 지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2011년 갤럽조사에서 여성의 31%가 남아를, 33%가 여아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데 비해 남성의 49%가 아들을, 22%가 딸을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부모가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를 자녀와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 남아 혹은 여아 선호의 부분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때 울퉁불퉁한 사내 녀석들의 전유물이었던 각종 스포츠에 계집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딸 사이의 공통집합은 면적을 넓혔고, 둘 사이의 친화력 역시 강화됐다.
반면 남자이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는 어머니와의 공유공간을 넓혀줄 그 어떤 혁신적인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결혼생활에 있어서 여성의 결정권이 강해지면서 여아를 선호하는 아내가 딸을 기대하며 출산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예전처럼 부부사이의 경제적 종속관계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딸을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추론이 나온다.
물론 이와는 결을 달리하는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딸을 낳은 부부가 추가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에서라는 주장이 그 중 하나다. 딸은 아들에 비해 ‘관리비’가 많이 들어간다. 대학진학률도 사내 녀석들 보다 높기 때문에 학비부담도 부모를 지레 주눅 들게 한다.
새로 발표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남성은 초음파검사 결과 여아를 임신한 것으로 나타난 여친과의 결혼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딸은 둔 부부의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런 경향은 196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2008년에서 2013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현저히 약화됐지만, 자취를 감취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남성, 특히 백인 남성은 미국 사화에서 여전히 많은 혜택을 누린다. 여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고, 정부기관과 업계 진출도 훨씬 활발하다.
그러나 요즘은 학업 면에서 어릴 적부터 여자 아이들에게 뒤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수준은 이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숙제가 많아진 반면 놀이 시간은 줄어들었다.
이 같은 변화에 사내 녀석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한다.
일선 교사들은 남자 아이들이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문제 있는 행동거지를 자주 보이며 학과 진도를 따라잡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게다가 노동시장에서는 협력과 공감 등 사교적인 스킬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이에 비해 근력을 필요로 하는 남성전용 일자리는 큰 폭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암허스트 소재 매사추세츠 대학의 사회학교수인 댄 클로슨은 “분명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완전한 성혁명을 이루었다”며 “내가 딸을 키운다면 그건 사회적 관습에 도전하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지만, 아들을 키운다면 학교 수업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말썽이나 피우기 십상인 찌질이를 키우게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계집아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이 축하해야 할 일이겠으나 그것이 단순히 사내아이에 대한 부정적 편견으로 대체되는 것이라면, 사회에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을 떠안겨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딸보다 아들을 원했으나 남아선호 추세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 Richard Perry/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