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4’보수로 무게추 기운 구도 반영… ‘고서치 효과’ 본격화
행정·입법도 보수화… “국가안보 이슈서 사법부 역할에 의문”
미국 헌법의 ‘최후의 보루’로 꼽히는 연방대법원이 26일 진보-보수 가치관이 맞부딪치는 주요 쟁점에 관한 판결에서 잇따라 보수 진영의 손을 들어줬다.
작년 4월 보수성향의 닐 고서치(50) 대법관이 합류하면서 대법원 이념지형이 5 대 4의 ‘보수 우위’로 되돌아간 상황과 무관치 않다.
고서치 대법관을 지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든든한 정치적 우군을 얻은 모양새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낙태 논란과 관련해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보수 진영의 ‘낙태 반대론’을 뒷받침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낙태 반대기관을 방문한 임신부들에게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절차 등을 안내하도록 한 캘리포니아 주법의 시행을 막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내린 ‘반이민 행정명령’ 판결과 마찬가지로 이념 성향에 따라 5대 4로 의견이 쪼개졌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이념적 무게중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서치 대법관을 비롯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앨리토,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등 5명은 보수성향으로 꼽힌다. 나머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등 4명은 진보성향으로 분류된다.
대법원은 이날 이슬람 5개국 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의 효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9월 이란,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시리아 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3차 행정명령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와이주 정부는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소송을 냈지만, 진보성향 대법관 4명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그쳤다. 나머지 보수성향 대법관 5명은 행정명령 시행에 찬성했다. 대통령이 이민 분야에서 국가안보를 고려할 수 있는 충분한 법적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 행정명령은 종교적 차별이 아니고 국가안보 측면에서 정당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앞서 대법원은 작년 12월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부분적으로 중지한 항소법원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백악관의 요청도 받아들인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결과적으로는 고서치 대법관을 지명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전했다.
여성인권 단체의 페니 낸스는 NYT에 “5대 4의 찬반 구도는 고서치 대법관의 핵심 역할을 상기시킨다”면서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81%가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던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은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고서치 대법관과 악수하는 사진을 게재하면서 ‘고서치 인준’을 공화당의 주요 업적으로 꼽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반이민 행정명령 판결과 관련, 트럼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주력했던 정책이 대법원에서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통상 정치권의 몫으로 남겨지는 국가안보 이슈에 있어 사법부 역할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차원을 넘어 입법·행정까지 미국 사회 전반의 ‘우향우’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이 이번 11월 중간선거에서만 선방한다면 3부(部)의 보수 우위 체제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한 각종 난제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 역시 또 다른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방대법원이 첨예한 쟁점들의 마침표를 찍는 구조를 고려하면, 각종 보수 어젠다를 강행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법원의 ‘지원사격’이 필수적이다. CNN방송은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더 폭넓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전했다.
종신직인 대법관들의 높은 연령대를 고려하면 앞으로 보수성향이 한층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진보성향 긴즈버그와 브라이어 대법관의 나이는 각각 84세, 79세다. 보수성향이지만 몇몇 사회 문제에서 진보적 의견을 내는 케네디 대법관도 81세로 나이가 많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색채가 뚜렷한 판사 5명을 ‘대법관 후보군’에 추가한 바 있다.
22년전 베트남에서 이민온 버지니아 펄 처치의 페니 부가 26일 보수 성향의 판결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연방 대법원 앞에서 대형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