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월 42만원 바우처 등 각국 기술교육에 사활
한국은 교육예산 중 평생교육 예산 고작 0.8% 그쳐
대학·기업·지역 유기적 협력, 재교육 시스템 고쳐야
4차 산업혁명으로 평생교육의 중요성이 초·중·고·대학 등 정규교육을 넘어서는 시기가 곧 닥칠 겁니다. 하지만 대학의 평생교육원은 아직도 간판을 따는 곳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에듀테크(교육기술기업)마저 각종 규제로 비즈니스에 발목이 잡혀 있어요.”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의 쓴소리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시대착오적 타성에 젖어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일자리 변화가 급속도로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평생교육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물류창고 정리 등 단순 반복업무부터 의사(왓슨)·변호사(로스) 등 전문직까지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며 상당수 기업에서 일자리(job)와 직무(task)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은 상아탑에 갇혀 제 역할을 망각하고 있고 교육기관·기업·지방자치단체(지역) 간 유기적인 협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사회 재교육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태진 서울대 교수는 “지금까지 패러다임 전환이 이전 사회구조의 골격을 유지한 채 일부만 바꿨다면 이제는 사회와 산업생산 전체가 재설계되고 있다”며 “(사람이) AI와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평생을 통한 재교육과 미션별 훈련 시스템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국가 차원의 평생교육 추진
1970~1980년대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은 ‘아시아의 4룡’으로 불렸다. 이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국가가 싱가포르다. 지난 2015년부터 추진돼온 ‘스킬스퓨처운동(SkillsFuture Movement)’ 때문이다.
핵심은 기술 습득을 장려하기 위해 25세 이상 국민에게 바우처 형태로 월 500싱가포르 달러(약 42만원)를 지급하고 주기적으로 성과를 점검해 금액 충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 이 정책에는 고도 성장기의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평생학습을 통해 전국민적 동기부여를 꾀하려는 철학이 담겼다. 단순 이벤트성 자금 지원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뿐이 아니다. 핀란드 제2도시 에스포는 도시 차원에서 평생학습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 내 모든 거주자에게 이 지역 출신 스타트업이 개발한 ‘모바일러닝 서비스’(funzi)를 공짜로 이용하도록 한 정책이 눈에 띈다. 이외에 호주 멜턴시도 고용률과 직업교육 참여율 목표를 잡고 ‘학습도시’라는 콘셉트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고 있다.
홍정민 휴넷에듀테크 연구소장은 “성인 교육시장이 직장인에서 실버세대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만큼 이런 수요를 교육 시스템 안에 잘 녹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위 장사 하는 평생교육원 바뀌어야
일본 나가노현에 위치한 마쓰모토대. 이곳은 지역과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나가노현은 식료품 제조업과 농업이 유명한데 마쓰모토대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지역 기업에서 활용하고 또 대학으로 돌아와 연구하며 성과를 검증하는 식의 시스템을 갖췄다.
한국에서는 포스코가 설립한 포스텍이 여름방학을 3개월로 늘려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유도하는 ‘SES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삼성전자·LG전자·SK하이닉스·오라클 등 유수의 기업에서 일해보는 기회를 얻는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앞으로는 인재들이 사회·정서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의 평생교육원이 직업교육과 유리된 채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교수는 “직업 변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평생교육원은 의미가 없다”며 “대학을 못 나온 사람에게 학위를 내주는 운영방식은 개혁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예산 확보도 절실하다. 평생교육 관련 예산은 한국 전체 교육예산에서 비중이 1%에도 못 미친다. 선진국은 전체 예산의 7~8%에 이른다. 한 대학 관계자는 “2024년 대학 입학정원이 수능 응시생보다 많아져 대학 재정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사회의 교육 수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관련 규제 손봐야
규제도 평생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들은 교육 콘텐츠를 클라우드에 올리지 못하도록 한 점과 ‘비식별화’ 규제가 불명확해 개인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점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난관에 막혀 민간 교육기관들이 맞춤교육 콘텐츠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사교육비만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교육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 보호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원론적 주장에 기가 눌려 정책 담당자들이 미적거리고 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에듀테크는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시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학은 사회문제 해결형 프로젝트형 교육과 지적재산권 중심 산학협력으로 재탄생하고 에듀테크는 평생교육의 효율화를 기치로 성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