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절반이 재혼
종종 재산문제 대두에
아예‘동거’ 선택하기도
캘리포니아, 샌클레멘티에 사는 크리스와 티나 아나스타시오 부부는 13년 간 데이트를 하다가 지난해 결혼했다. 크리스는 84세, 티나는 77세. 이들 부부는 최근 큰 추세가 되고 있는 재혼의 한 전형이다. 노년의 재혼이다.
그런데 이들 커플이 재혼한다고 하자 모두가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두 번 결혼했다가 두 번 이혼한 크리스의 설명이다.
“티나가 자녀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니까 막내딸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엄마의 집을 누가 차지할 건가 하는 문제이지요.”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살던 노년층이 아직도 살 날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결혼을 하려고 하면 종종 등장하는 이슈이다.
퓨 리서치 센터의 지난 2014년 재혼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55세 이상 연령층의 재혼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과거 결혼 경험이 있는 55세에서 64세 인구 집단 중 67%가 재혼을 했다. 지난 1960년의 55%에서 껑충 뛰어 오른 수치이다. 65세 이상 노년층 중에서는 50%가 재혼을 함으로써 1960년의 34%와 크게 비교가 된다.
퓨 리서치의 이 보고서를 작성한 선임 연구원 그레첸 리빙스톤은 이같이 재혼이 늘어나는 이유가 기대수명 증가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본다.
“살 날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 남은 시간을 여한이 없이 잘 살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노년의 커플이 재혼해서 여한이 없이 살려면 결혼하기 전 각자의 재정계획을 꼼꼼하게 살피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노년에 재혼을 하면 금전 문제가 삶의 질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국 노년 법 변호사회의 하이먼 달링 회장은 말한다.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이자 때로는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돈 문제로 마찰이 생기지 않게 미리 계획을 세우라는 조언에 재혼을 포기한 커플이 여럿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인생 말년에 다시 결혼을 함으로써 파생될 수 있는 위험으로는 상황에 따라 메디케이드, 소셜시큐리티 연금 같은 정부 베니핏을 잃는 것이다. 소득세나 재산세가 올라갈 수도 있고, 은퇴연금이나 이혼수당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더 심각하게는 결혼 서약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새 배우자의 부채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장기 의료비용 문제도 나오고 그 비용의 법적 책임이 새 배우자에게로 돌아갈 것인지의 문제도 등장한다.
달링 회장과 관련법 전문 변호사인 리나 길렌에 따르면 노년의 남녀가 결혼을 생각할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성인 자녀들에게 미칠 영향이다.
“노년의 커플들이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남기로 결정하는 보편적인 이유는 재산을 자기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성인자녀들은 유산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고,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새 배우자가 생기면 여러 민감한 사안들이 생기는 것이지요”라고 길렌은 말한다. 그는 지난해 ‘동거: 결혼하지 않은 커플을 위한 법적 안내서’라는 책을 펴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아나스타시오 부부가 산 증인이다. 걱정하는 딸에게 부인은 새 남편 크리스가 자기 재산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보다 오래 살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안심을 시켰다. 그런데도 딸은 믿지 않는 눈치이다.
아나스타시오 부부가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은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실용성 때문이기도 했다. 부인 티나는 영국인이다. 결혼하기 전 티나가 미국을 방문하면 무비자로 3개월 체류가 전부였다. 이들이 아무리 여행을 즐긴다 해도 그렇게 자주 오고 가야 하는 것은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 나이에 수도 없이 공항에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게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지요.”
이들은 조촐한 결혼식을 하면서 변호사나 재산 설계사와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딸을 불편하게 했을 것으로 그들은 인정한다. 크리스는 말한다.
“우리는 어디가나 항상 부부로 대접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티나의 딸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부부는 뭔가를 문서로 남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무슨 일이 생기든지 티나의 것은 티나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일뿐 서로 섞지 않는다”는 걸 써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 우리는 우리를 걱정할 때이지 자식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문서로 작성해 둘 계획입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난 후에 하기로 결정했다. 길렌의 설명은 이렇다.
“커플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다가 유언장 없이 한 사람이 죽으면 일반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는 아무 것도 상속받지 않습니다. 재산은 혈연관계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자녀가 일순위입니다.”
길렌에 의하면 아나스타시오 부부처럼 노년에 재혼하는 커플들은 반드시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가장 전형적 절차는 부부가 각자의 유언장과 혼전계약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성인자녀들의 유산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다고 안심을 할 수가 있다.
노년의 커플들이 결혼을 함으로써 얻는 혜택으로는 우선 살림을 합침으로써 금전적으로 절약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는 주에 따라 부부 소득으로 보고하면 세금이 낮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재혼으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07년에서 2016년 사이 50세 이상 커플 중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숫자가 75% 늘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커플 중 하나로 워싱턴 DC에 사는 존 야너와 쇼운 바즈너가 있다. 둘 다 67세로 이혼한 야흐너와 바즈너는 지난 2014년 매치.컴에서 만났다. 그리고 2년 전부터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야흐너는 세쌍둥이를 둔 아버지로 아메리칸 대학 강사이다, 그는 영적인 의식으로 결혼할뿐 법적 결혼은 하지 않겠다면서 “28달러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농담을 한다.
바즈너는 두 아들의 엄마이자 예술가이고 보석 디자이너이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딴 사업체가 있는데 법적으로 결혼을 하면 그 재산에 대해 야흐너가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유산과 관련해서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남자친구 여자친구 보다는 깊은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난해 성공회 신부인 친구 앞에서 결혼서약을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묶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결과 이들은 서로에게 단순한 사이 이상의 특별함을 갖는 한편 자녀들의 미래를 보호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자녀들이 안도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이 받을 유산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부부가 잠깐 살다 말 사이가 아니라 오래 같이 지낼 관계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한 것이다.
13년 간 데이트 하다가 지난해 결혼한 크리스와 티나 아나스타시오 부부. 80대 중반의 크리스와 70대 후반의 티나가 재혼하자 티나의 딸은 엄마의 재산을 걱정하고 있다. <Joyce Kim - 뉴욕타임스>
결혼 서약은 했지만 법적 결혼은 하지 않은 존 야너와 쇼운 바즈너. 재산권 문제들이 대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은 같이 살 뿐 법적으로 묶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