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에서 빠져 나오는 데 수년 걸려
투병 땐 어려도 동참시키는 게 바람직
캔자스 주 실버레익에 사는 리버스 슈웬은 이제 16세인데 절대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굉장히 좋아한다. 그러나 여동생 파커가 아홉 살 때 1년반 동안 암과 투병하다가 죽는 과정을 지켜본 후에는 다시는 그런 경험을 겪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암에 걸려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만 드는걸요”라고 털어놓은 리버스는 “동생이 아프기 전에는 암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이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파커가 아팠을 때 리버스는 카운슬러를 두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상담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는 그는 여기저기서 열리는 아픈 어린이나 형제를 위한 캠프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동생이 생존률 제로의 어린이 뇌종양인 뇌교 신경교종으로 떠나고 난 후 리버스는 동생과 함께 열심히 했던 댄스와 학교공부에 파묻히는 것으로 자신을 달래고 있다. 어떻게든 정상적인 생활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미국 어린이 5~8%가 형제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상실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고, 불치병에 걸린 아이의 형제들은 대부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있다. 형제가 일찍 죽은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서포트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2010년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어린이병원 109곳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중 48%만이 환자의 형제에 대한 서포트를 제공했다. 2014년 연구에서는 암으로 형제를 잃은 청소년은 2~9년 후에도 상실감에 빠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에서 한 아이가 아프면 건강한 형제는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부모는 아무래도 아픈 아이를 돌보는 데 정신을 쏟기 때문에 건강한 아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도 쓰지 못한다.
뉴저지 주 멀리카 힐에 사는 12세 레베카 맛츠는 1년 동안 부모가 숙제를 봐준 적이 없다고 말한다. 3년전 동생 엘리(8)가 백혈병 진단을 받자 부모는 레베카에게 “공평하지 않은지는 알지만 엘리가 나아질 때까지는 그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맨날 ‘우리 엘리가 정말 용감하구나’라고 말하곤 하지요. 그러면 나는 ‘제발 그만해요. 나도 여기 있다구요, 나에게도 관심을 좀 보여주세요!’라는 심정이 된답니다”라고 레베카는 호소했다.
어렸을 때 형제를 잃은 성인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감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느낌, ‘숨겨진 슬픔’이다. 형제 잃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연구해돈 브루클린 대학의 데이빗 바크 교수는 “형제를 잃은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메시지는 자기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그들은 죽은 형제에 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 주제에 관한 책(The Empty Room: Understanding Sibling Loss)을 쓴 엘리자베스 드비타-레이번(51)은 “사람들은 아이가 아픈 동안이나 죽었을 때 그의 형제자매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녀는 열네살 때 17세의 오빠가 재생불량성 빈혈로 숨지는 일을 겪었다. 당시 그의 이야기는 1970년대 ‘플라스틱 버블 속의 소년’이란 TV 스페셜에도 나온 적이 있을 만큼 유명했다.
드비타-레이번은 그때 오빠의 장례식에서 한 여인이 자기에게 한말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네가 잘 해야 한다, 지금부터 엄마 아빠가 굉장히 힘들어질 테니까”라고 했던 그 말은 드비타-레이번의 경험과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게 됐노라는 설명이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 속으로 숨어버린다. 애리조나주 스카츠데일의 애쉴린 벤틀리(17)는 9세 여동생 아브리엘이 2년전 유윙스 육종(Ewing’s sarcoma) 진단을 받았을 때 한동안은 부모 외에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몇달간 사람들과의 관계를 차단했어요.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러나 벤틀리는 암 투병 어린이와 가족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비영리 단체 ‘트루스 365’(Truth 365)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 길레트를 만나고 난 후 자신 같은 형제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 길레트 감독과 벤틀리는 전국을 다니며 그런 형제들을 인터뷰해 카메라에 담았고, 그들의 스토리를 조금씩 온라인에 내놓고 있다. 전체 다큐멘터리는 올해 안에 개봉될 예정이다.
길레트 감독과 일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고교 과정을 이수중인 벤틀리는 “형제가 암에 걸렸을 때 가장 힘든 점은 내가 조금이라도 낫게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형제는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서포트 해주는 존재이지만 암이란 문제에 부닥치고 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그 아픔을 전했다.
또 하나의 이슈는 한 아이가 아플 때 가족 모두가 투병 계획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아이는 그런 과정에서 제외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면 형제가 죽고 나서도 가족이 함께 애도하고 상실감을 나누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부모가 슬퍼한다고 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화제에 올리고 함께 극복해간다면 훨씬 편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조언했다.
한가지 긍정적인 점은 어린 시절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또래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회복력이 강하고 감정적으로 더 성숙하다는 연구 결과들이다. 2013년에 아픈 형제와 함께 성장한 17~24세의 청소년 4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동년배보다 공감 능력과 동정심이 훨씬 더 많이 개발돼있었다. 인생의 한계와 연약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누군가 아픈 것을 가까이서 본 경험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형제의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른들의 슬픔과 간병에 가려 건강한 아이들은 대부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림 Aidan Ko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