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전문기업 팬톤 매년 선정 유행 척도로
한때 왕족들만 사용… 일부선 불길 상징도
뉴욕을 기반으로 매년 올해의 색을 선정, 발표하는 색채 전문기업 팬톤(Pantone Color Institute)은 2018년의 색으로 짙은 보라색인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을 선정했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팬톤은 특정 색상에 고유 일련번호와 이름을 붙인 팬톤 매칭 시스템(PMS)을 개발한 회사로, 2000년부터 매년 올해의 색을 발표해왔다. 2016년에는 파스텔 색조의 로즈 쿼츠(Rose Quartz)와 세레니티(Serenity)가, 2017년에는 연둣빛의 그리너리(Greenery)가 올해의 색으로 선정된 바 있다. 팬톤이 선정한 색은 전세계 패션, 미용, 인테리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유행 색상의 척도로 삼는다.
2018년의 색상으로 보라색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복합적인 색깔이기 때문”이라고 이 회사의 행정디렉터 레아트리스 아이즈맨은 말했다. “정반대인 2개의 컬러-파랑과 빨강을 섞었을 때 창조되는 전혀 새로운 색깔”이라고 설명한 아이즈맨은 “2018년에는 뭔가 낙관적이며 힘을 돋우는 색을 고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설명한 ‘복합적’(complex)이라는 단어는 딕셔너리 닷컴(Dictionary.com)이 2017년의 단어로 선정했던 ‘연루된’(complicit)과 어원을 같이 한다. 그러나 ‘연루된’이 어두운 함의를 가진 것과는 달리 ‘복합적’이란 단어는 신비함과 함께 희망을 약속하는 말이다. 그러니 성희롱에 ‘연루된’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진 2017년을 보낸 후 찾아온 ‘복합적’인 한 해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고대에 보라색은 아주 귀한 색이었다. 보라색 염료는 페니키아의 항구도시 티레(Tyre, 성경에서 두로)에서 나오는 바다우렁이의 점액으로 만들어졌다. 티레는 예루살렘과 교역했고, 리디아에서 보라색을 살 수 있었다.
이처럼 생산이 힘들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라색은 굉장히 가치가 높았고, 부와 권력, 왕족이 사용하는 색깔이었다. 16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왕족과 가까운 친족을 제외하고는 보라색 옷을 입지 못하도록 엄명했다고 전해진다.
평민들도 보라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은 1856년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이다. 그는 말라리아 치료약을 제조하던 중 인조 보라색을 합성해냈고, 특허를 내서 보라색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미국에서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상을 당했을 때 보라색 상복을 입기도 하고, 프린스와 데이비드 보위, 지미 헨드릭스 등 도발적인 가수들이 울트라 바이올렛을 즐겨 사용했던 것은 팬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 한편 보라색은 불길한 징조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국기상청(NWS)은 올 여름 휴스턴을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하비의 지도에 퍼플을 사용했고, 바로 최근에는 남가주 산불 지도에서 빨강색의 위험도를 넘어서 ‘극도로 위험한 지역’을 가리킬 때 보라색을 사용했다.
또 다른 면으로 이 색깔은 많은 사람에게 마음챙김(mindfulness)을 상징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마음챙김과 명상에 관련하여 보라색을 많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벤더 빛깔처럼 마음에 진정을 가져다주는 색으로도 쓰인다.
색깔을 앞서 예견하는 패션 업계는 2016년 가을 콜렉션에 이미 보라색을 주요색으로 선보였고, 올해 패션쇼에서도 구찌, 발렌시아가, 베르사체, 모스키노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울트라 바이올렛을 포인트로 사용한 의상을 선보였다. 또 색조 화장품 트렌드에서도 아이섀도우, 립스틱, 매니큐어 등 보라색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팬톤이 2018년의 색으로 선정한 울트라 바이올렛. 왼쪽부터 발렌시아가 2018 봄 남자 패션, 구찌 2018 봄 패션, 마니 2017 가을 패션. <사진 Nowfash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