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15일은 광복절을 경축하는 제72주년 기념일입니다.
우리의 광복은 열강(외세)에 의해 찾은 광복이었지, 자주적인 광복은 아니었기에 남과 북의 분단이 고착화 된 상황을 초래 했습니다.
아직도 남과 북이 무력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정전상태라 통일이 되는 그날에 맞이할 조국의 광복절 경축기념식을 꿈꾸어 봅니다.
광복 제72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조국의 진정한 광복의 의미와 제2의 조국인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할 투철한 역사의식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갖추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때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책무와 도전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요?
8월 15일의 제72주년 광복절을 맞는 특별한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합니다.
북 핵의 위협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보다 대한민국의 생존의 문제는 중국에 달려있다고 사대하는 논리가 득세하는 것 같아 실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올바른 역사관 국가(안보)관 세계관을 함께 지녀야 할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미국이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하여 수많은 인명을 잃고 희생을 치른 혈맹의 관계를 넘어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원조한 국가라는 사실을 쉽게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날 대한민국이 수원 국가에서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던 토양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요?
민족적 고난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역량을 실현했던 우리 민족의 저력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에, 지난 2010년. 조지아 주 정부가 8월 15일을 “한국의 날”(KOREA DAY)로 선포 했었습니다.
조지아 주 정부의 한국의 날 선포는 그동안 한국과의 우의와 경제적 문화적 긴밀한 유대 관계의 증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한국 교민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결정 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제72주년 광복절을 맞는 한국 국민이나 미국교민 사회뿐만 아니라 미 주류사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게 요구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8월 15일 광복절 제72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세계의 약소국가 민족이 국난을 극복하고 광복을 찾았던 주제의 음악을 경축 음악으로 듣는 것도 의의가 크다 하겠습니다.
“얀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는“러시아” 압제에 신음하는 약소국가의 운명과 저항정신을 표현한 곡입니다.
“핀란디아”는 “스웨덴” “러시아”의 거듭된 침략으로 인한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우리 한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핀란디아”의 제2의 애국가처럼 애창되는 이 곡이 “핀란디아” 국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애국적 감정을 자극해 저항운동의 기폭제가 될 것을 “러시아”정부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수년간 금지 시켰었습니다.
서주의 민족 수난의 모티브는 불안하고도 우울한 민족감정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목관악기와 현악기는 약소민족의 고통의 신음 소리를 표현하며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포효가 강렬한 투쟁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민족의 저항정신을 고취하는 행진곡풍의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정신이 고양되는 가운데 암운이 걷히고 광명이 찾아듭니다.
승리의 개선으로 치닫는 곡의 종결부 합창은 인간 영혼의 수면을 흔들어 놓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유진 올만디가”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몰몬 타베내클” 합창단의 장엄한 합창이 압권입니다.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나부꼬> “느브가네살”:왕은 구약 성서에 바탕을 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이락)의 포로가 된 유대(히브리) 민족의 고난을 소재로 한 내용입니다. “베르디”가 이 곡을 작곡할 무렵은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신음하고 있던 때여서 외세로부터 해방과 자유, 조국 독립의 염원이 일치하여 이태리 국민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이태리 국민들에게는 제2의 애국가처럼 불리어지는 합창곡입니다.
오페라 <나부꼬>중에서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히브리 노예들이 “유프라데스”강가에서 멀리 떠나온 조국 시온(유다)을 그리며 부르는(시편: 137편)처절한 노래입니다.
영국 “앰브러시안” 합창단의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애절한 합창이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