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위성 아이디어 세계 첫 발명
미래 기술에 놀라운 선견지명
그의 이름 딴 과학상 문학상 등내
평생‘광활한 우주 속 인간’천착
우주 진출을 예언하고 인도하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성찰 던져
생 때였다. 아서 C. 클라크의 ‘地球幼年期 끝날 때’(동서추리문고 발행). SF라면 외계 괴물과의 대결이나 시간여행 모험담 정도로만 생각했던 내게 이 작품이 준 충격은 크고도 깊었다. 전능하다시피 한 외계인들이 와서 지구를 접수한다. 그들이 온 뒤로 인류는 유례없는 유토피아를 누린다. 하지만 그들에겐 숨은 목적이 있다.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에 정치, 종교, 문화, 과학 등등 인간의 모든 지적 영역에 대한 과감한 통찰을 담은 이 작품을 읽으며 시공간적 시야의 확장을 경험했다. 올해는 작가 아서 C. 클라크의 탄생 100주년이다. 세계적인 SF 작가이자 미래학자였던 그는 20세기 과학기술 문명에 몇 가지 핵심적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며, 그 유효기간은 인류가 종말을 맞을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오디세이아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클라크의 한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클라크는 큐브릭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소설로도 집필해 영화가 개봉된 뒤 출판했다. 인간이 달에 다녀오기 1년 전인 1968년에 나온 이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그만큼 내용이 난해하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원시 인류는 미지의 외계 존재에 의해 지적 발전을 이루고, 21세기에 이르러 그 외계 존재가 남긴 메시지와 다시금 조우한다. 메시지를 좇아 토성(영화에서는 목성)으로 날아 간 우주선은 불가사의한 일을 겪는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세계와 우주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먼 옛날 인류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시절부터 우주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제 우리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나이와 크기를 대략 짐작한다. 그 광막한 공간에 ‘과연 우리뿐인가?’라는 의문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이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지적 존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클라크는 평생을 두고 이 주제에 천착했다. 그가 택한 방법론은 과학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결합이었다. 신화나 판타지가 아닌,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를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시대를 앞선 통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통신위성 아이디어의 창안자
미국위성방송통신협회(SBCA)에서는 1987년부터 방송통신 분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 아서 클라크 상을 준다. 마땅한 자격이 있는 후보가 없을 경우 시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껏 수상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최근 수상자는 2014년에 나왔는데 그 전까지 무려 15년간 수상자가 없었다. 1999년의 수상자는 세계 전자통신공학계에서 ‘디지털 HDTV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백우현 박사(전 LG전자 사장)였다. 그는 미국에 있을 당시 새로운 디지털 신호 압축 표준을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디지털 HDTV 시스템을 만든 팀을 이끈 책임자였다.
이 상에 클라크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얼까? 바로 그가 세계 최초로 통신위성이라는 아이디어를 대중화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클라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에서 레이더 담당 장교로 복무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에 그는 한 학술지에 인공위성을 통신중계용으로 쓸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지구의 자전 속도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지위성’을 3개만 띄우면, 지구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위성중계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등장한 것이 그로부터 12년이나 더 지난 1957년이었고, 그의 아이디어처럼 통신위성이 실용화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아서 클라크는 생전에 ‘이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 등록을 왜 하지 않았을까’하고 농담 삼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랬더라면 그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더 의미심장한 철학적 성찰
그러나 클라크의 과학기술 전망이 얼마나 선도적이냐는 것만으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의 상상력은 과학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를 통해 세계와 우주를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1973년에 발표한 장편 ‘라마와의 랑데부’에 잘 드러난다.
어느 날 우주 저편에서 거대한 원통 모양의 인공 물체가 태양계로 날아온다. 시시각각 지구 쪽으로 다가오는 이 물체에 탐사선이 파견되어 내부로 들어가 조사를 벌인다. 놀랍게도 그것은 미지의 외계 존재가 만든 거대한 우주식민지였는데, 정작 외계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발표된 뒤 세계의 주요 SF문학상을 휩쓸며 곧장 SF문학사의 걸작 반열에 오른 이 작품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3의 철학’이다. 미지의 외계 존재가 남긴 문화는 무엇이든지 ‘하나, 둘, 셋’으로 이루어진 철학이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축 구조물들은 동일한 모양이 세 개씩 있고, 각종 로봇의 눈이나 팔다리는 모두 3 또는 3의 배수다. 여러 물체들로 추측컨대 외계인들 역시 팔이 셋 달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내용은 사실 지구 인류를 지배해 온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다. 인류는 태양의 낮과 밤의 달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의해 규정된 철학적 사유체계에 갇혀 살아왔다. 또한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외계인들의 세계는 그와 전혀 다른 환경, 다른 원리일지도 몰랐다. 결국 이런 묘사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구 중심주의나 인간 중심주의가 과연 우주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아서 클라크가 쓰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우주를 향한 동경을 그려낸 클라크의 SF는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 인류의 운명임을 알려준다. 아니, 그가 그 운명을 지운 것인지도. <워너브라더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