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굴기·트럼프 변수에 완성차 제조사 대응 각각
전동화 전환으로 촉발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구도 재편이 중국의 굴기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판매량 기준 세계 7, 8위인 일본 자동차회사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추진하고, 세계 2위 완성차그룹인 폭스바겐이 본국 직원 3분의 1을 감축하는 것은 이러한 재편에 대응하는 대표적 예로 꼽힌다.
다만 업체들의 대응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거나 인원 감축 등으로 규모를 줄이는 양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모두 비용 효율화를 위한 조치라는 점에는 업계에서 이견이 없다.
혼다와 닛산은 2024년도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기준 각각 380만대와 34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할 전망인데 두 업체가 합쳐질 합산 판매량은 720만대에 이른다. 여기에다 닛산이 최대 주주인 미쓰비시까지 통합될 경우 총판매량은 800만대에 이르고, 지난해 기준 73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현대차그룹을 뛰어넘게 된다.
혼다와 닛산은 전동화 전환기 속 경쟁력 회복과 비용 효율화를 위해 합병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혼다는 트럭 등 닛산 상용차 기술을, 닛산은 혼다 하이브리드 기술을 공유할 수 있고, 전고체 배터리, 자율주행 등 미래 성장동력에 중복적으로 투자되는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시너지 전망에도 불구하고 완성차 업계가 이른바 ‘약자들의 동맹’인 혼다와 닛산 합병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다. 혼다와 닛산의 통합은 다른 업체와의 성공적 인수합병으로 글로벌 2, 3위로 발돋움한 폭스바겐그룹이나 현대차그룹보다는 5위권으로 떨어진 스텔란티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두 업체가 전동화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개발 경쟁에서 뒤처져있는 것을 고려할 때 SW 및 인공지능(AI) 분야 파트너와 손을 잡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몸집 불리기에 나선 일본 업체들과 달리 독일 폭스바겐은 오히려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폭스바겐 노사는 지난 20일 오는 2030년까지 독일 내 일자리를 3만5,000개 이상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독일 직원 12만명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최근 폭스바겐은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독일 공장 10곳 중 최소 3곳을 폐쇄하고, 전체 직원 임금을 10% 삭감하는 방안을 노조에 제시한 바 있다. 폭스바겐이 대대적인 인원 감축에 나선 주요 이유로는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이자 폭스바겐 판매량의 3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의 부진이 꼽힌다.
폭스바겐은 1980년대 중반 중국에 진출해 현지 공장을 잇달아 지으며 선전했으나 최근 중국 내수 침체와 BYD(비야디) 등 현지업체 급성장으로 입지가 좁아졌다.
폭스바겐그룹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9년 19%에서 지난해 12%로 급감했다. 특히 중국에서의 부진은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는데 올해 폭스바겐그룹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29억700만유로(19조3,557억원)로, 판매량 기준 3위인 현대차그룹(21조3,681억원)보다 2조원가량 밑돌았다. 특히 1∼3분기 영업이익률은 5.4%까지 떨어지며 현대차그룹(10.2%)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