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CBS 하라미 국장이 우리 딸이 시집 가는데 ‘축시’ 부탁합니다라 했다. 따님 이름이 뭐죠? 했더니 ‘빛나’에요 했다. 결혼식 축시란 그리 쉽지 않고 개인이 오랜 지인이 아닌 때는 무슨 말을 써야 하는지 망설일 때가 많다. 그런데 딸 이름이 ‘빛나’라는 말에 나는 그자리에서 ‘빛나는 시집가네’로 축시를 쓰기로했다.
‘당신이 빛나는 순간’은 전 세계 베스트 셀러로 뜨면서 우울한 2020년의 코로나의 아픔을 이겨 나가기는 지침서로 뜨고 있다.
빛나의 결혼식 때 축시 낭송 시간에 ‘빛나는 시집가네’ 시의 첫 마디에 오신 축하객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신랑의 빛나는 사랑의 눈빛, 빛나는 그 순간 , 빛나는 세상에서 오직 행복한 한 사람 ‘빛나가 시집 가네’ 결혼식장이 축제의 분위기로 빛났다.
‘빛나가 시집 가는 날’ 그 행복이 지금도 내 가슴에 ‘빛나의 축복’이 넘쳐난다.
2020년 대학 졸업식에서 졸업 가운을 입어보지도 못하고 서로 껴안고 인생의 첫 발을 세상을 걸어나가는 그 꿈의 졸업식이 없던 날, 부모도 자녀도 집에서 줌을 통해 졸업식을 보면서 울었던 아픔을 우린 함께 울어야했다. 세상에 코로나의 아픔이 닥쳐 올줄을 누가 감히 알았을까--
나 자신 ‘미주 숙명 총회’를 애틀랜타에서 열기로하고 한국, 미주 전역에서 모인 숙명의 선후배들을 맞이할 기쁨이 무산되고 말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고향에서 --
‘빛나는 숙명 축제’를 준비하다가 ‘코로나’로 무산 되고 말았다. 2022년으로 연기 되었지만.
‘거리를 두라’는 마음 조차 멀어지고 세상은 그 옛날 창조 이전 처럼 막막하고 어둡기만했다.
어떻게 남은 생을 살 것인가? 늘 내 생의 어려운 날 스스로 던진 한마디.
이민자의 삶에서 길 없는 날이 어디 오늘 뿐이었던가--- 절벽 산책같은 그 길에서 어찌 살아왔는지 돌아보면 아픔 투성이다. 2020년를 의미의 한 해로 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고 싶었다. 글을 쓰자, 다시 태어 나고 싶었다. 누군가 언제 태어났느냐? 묻자 ‘날마다 태어납니다.’했듯이.
삶과 죽음은 하늘의 뜻이고 잃어버린 내 원초적 운명과 맞서고 싶었다. 내 속에 감추어진 ‘빛나는 나’를 찾아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길 떠나고 싶었다. 책 속에 묻혀서 내 전 존재를 불사르고 싶었던 소녀 시절을 다시 한번 돌아가 보고 싶은 지난 아픔도 동반하며 새롭게 숨겨진 진리 속으로 꿈꾸는 자가 되고 싶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다시 태어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헤르만 헤세)
묻혔던 집안에 꽃들도 심고, 솔밭 사이에 바위들도 곁들였다. 마음 스산한 날 솔밭을 거닐으며 침묵의 경전같은 솔들의 마음을 듣는다.
새벽 바람 따라 /돌산 종소리 울려 오면/ 새벽이 열린다/
묵혀둔 내 속 뜰이 열리고 / 빛나/ 빛나는 나다/ 영겁의 그빛이 /나 자신이다.
‘나 이제 마음편히 살기로 했다.’
정신과 의사의 책을 읽으며 나도 이젠 마음 좀 편히 살고 싶다. 사람은 죽기 전에야 ‘자신이 죽어서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왜, 우린 자신을 인질로 삼고 자신을 그토록 혹사시켜 왔을까?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닥터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 가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수없이 되뇌이며 그는 살아 남았다. 하버드에 정신과 의사로 정신분석학 교수로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기적을 이루었다. 사람은 죽기전에 내가 돈을 더 만들 걸, 더 좋은 직장을 가질 걸, 더 유명해 질 걸.
아쉬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루 일 분 만이라도 내 생명이 연장된다면---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이 행복해지기에 서성일 시간이 없다.
내 속뜰에 나에게 말하자.
빛나 ---
빛나는 ---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