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라면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별로 없다. 바빠서 밥 먹을 시간 없을 때도 라면, 전날 술 마시고 속 쓰린 아침에도 라면, 밤에 출출해도 라면. 돈 없어도 라면, 요리 못해도 라면, 밥하기 귀찮아도 라면.

 

당연히 한국은 라면 소비량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라면협회(WINA) 통계에 따르면 연간 한국인의 라면 소비량은 평균 74.6개(2018년 기준)로 세계 1위다.

 

한국인들에게 라면이 있다면 미국인들에게는 햄버거가 있다. 제대로 앉아서 식사할 시간 없을 때나 가볍게 한 끼 때울 때 단골메뉴는 맥도널드나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식당 햄버거. 메모리얼 데이나 독립기념일, 노동절 등 공휴일에 가족 친지들이 모이면 으레 뒷마당 바비큐 그릴에 불붙이고 햄버거나 핫도그를 굽는 것이 전통이다.

 

당연히 미국의 햄버거 소비량은 엄청나다. 연방농무부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비되는 햄버거는 연간 대략 500억 개. 1인당 하루 평균 2.4개꼴이다.

 

한 달이면 70여개의 햄버거를 먹는다는 계산인데 만약 정부가 이를 한 개로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국민은 햄버거를 한 달에 한 개만 먹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중적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고 말 것이다. 정부가 개개인의 부엌을 간섭하는 게 우선 말이 안 되고, 무엇보다 먹을 것 못 먹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그 비슷한 상황이 지난 주 벌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 대책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이 엉뚱하게도 소고기 소비 대폭감축으로 와전되면서 한바탕 가짜뉴스 소동이 벌어졌다.

 

발단은 영국의 대중지 데일리 메일의 보도였다. 바이든이 기후정책을 밀고 나가다 보면 미국인들의 소고기 소비를 90% 줄임으로써 1인당 연간 4파운드밖에 먹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바이든은 소고기 이야기를 입에 올린 적도 없다. 데일리 메일 기자가 미시건 대학의 관련 연구를 교묘하게 엮어서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내용이었다.

 

미시건 대학 지속가능 시스템 센터는 지난 해 가상 연구를 했다. 미국인들의 소고기 소비량을 얼마나 줄이면 식품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소고기 소비 90%(1인당 연간 4파운드), 다른 육류 소비 50%를 줄이면 배출량을 51% 감축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연구결과였다.

 

연간 소고기 4파운드면 햄버거로 한 달에 한 개꼴이라는 계산이 나오면서 가짜뉴스는 일파만파 퍼졌다. 폭스뉴스 등 보수언론과 공화당 정치인들이 정색을 하고 퍼트린 결과였다. “바이든이 햄버거도 마음대로 못 먹게 한다”는 ‘햄버거 금지설’이 한동안 그럴 듯하게 나돌았다.

 

그런 호들갑의 이면에는 공화당 보수진영의 다급함이 자리 잡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대통령을 어떻게든 공격해야겠는데 마땅한 공격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들이 ‘햄버거 금지’ 소문에 이때다 싶어 공격했는데, 완전 헛발질로 드러나고 말았다.

 

햄버거가 엉뚱하게도 뉴스의 초점이 되자 백악관 보좌관들 사이에서는 햄버거 조크가 무성하다. 예를 들면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매일 햄버거를 먹으며 기자단 브리핑을 시작해야겠다는 농담이다. 아울러 바이든 보좌진은 바비큐 그릴 앞에 서서 햄버거를 구우며 활짝 웃는 바이든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햄버거 금지’ 소동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