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연방하원에 한인여성 트리오가 입성하는 등 4명의 한인이 동시에 미국의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한 올 대선결과를 보면서 전해지는 감회다.
서상록이란 이름을 기억하는가. 한인 이민 1세로 두 차례나 캘리포니아 주 연방하원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번번이 경선의 벽에서 주저앉았다. 이 때가 한 세대 전인 1988년, 1990년 무렵이다.
수백을 헤아리는 이민 집단으로 구성된 나라가 미국이지만 코리안-아메리칸은 소수 중의 소수였다.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도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이런 정황에서 1992년 최초로 한인 연방하원의원이 탄생한다. 다이어몬드시 시장을 지낸 김창준씨가 1992년 새로 형성된 캘리포니아 주 41지구에서 연방하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 된 것이다.
3선을 역임한 김창준 이후 한인연방의원의 맥은 끊겼다. 그러다가 2018년 중간선거에서 이민 2세 앤디 김이 뉴저지 주 3지구에서 민주당후보로 당선함으로써 그 맥을 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앤디 김이 재선에 성공하는 등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이 4명이나 동시에 배출됐다. 특히 이들 중 3명이 여성으로 한국계 여성의 연방 하원의원 탄생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주 39 선거구), 미셸 박 스틸(공화-캘리포니아 주 48지구), 그리고 한인 혼혈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 워싱턴 주 10지구) 등이 그 면면이다.
한 세대 전부터 한인들이 세대를 걸쳐 부단히 두드려 온 미국의 중앙 정치무대의 문. 그 문이 결국 활짝 열렸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2020년 대선은 미주 한인정치사의 한 이정표로 기억될 것 같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2020년 미국의 선거는 어떤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대선 결과는 트럼프 패배, 바이든 승리로 귀결됐다. 그러나 진짜 패배자는 민주당 내 좌파일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든 선거는 정치적 결실을 거두는 동시에 새로운 씨를 심는다. 올 선거에서 민주당은 백악관탈환이란 수확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동시에 보수 세력의 결집이란 씨를 심었고 이는 2022년 중간선거, 더 나가 2024년 대선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으로 민주당의 아성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에서도 많은 보수세력 주도의 주민 발의안들은 통과 된 반면 좌파주도 발의안들은 부결된 상황에 주목했다.
연방 상하원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오히려 선전, 상원에서는 여전히 다수당 위치를 확보하고 하원에서는 다수당인 민주당과의 의석수 차이를 대폭 줄였다.
주 의회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지역에서 공화당 선방, 혹은 의석수 증가의 결과를 가져온 것. 특히 주목한 점은 대선에서 졌지만 트럼프가 7,300만 표를 얻어 역대 최고를 기록한 사실이다.
‘대통령선거에서는 이겼는데 의원선거에서는 사실상 패배했다’- 이 기이한 선거결과는 그러면 어디서 비롯됐을까. 미 유권 층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민주당 내의 버니 샌더스 추종 소장파 강경 좌파세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란 것이 대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이들의 반 트럼프 연대가 바이든 승리에 일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급 의원선거에서는 부담으로 작용, 민주당은 하원에서 최소 7석 이상을 빼앗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승리했지만 2년 후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크게 패배할 수도 있다’- 관련해 나오고 있는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으니 지분을 달라’- 이들의 요구다. 이와 함께 민주당내에서는 벌써부터 내부총질의 소리가 들려오면서 2022년의 전망을 한층 흐리게 하고 있다는 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