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피바디 박물관
한국실 재단장 내년 공개
“한국 유물들 특별 전시”
서양 기행문인 ‘서유견문’을 쓴 지식인 유길준(1856∼1914)은 미국내 최초의 한국인 유학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881년 일본 게이오의숙에서 공부하다 잠시 귀국한 뒤, 1883년 최초의 서양 사절단인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왔다. 그는 피바디 과학관(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의 전신)의 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1838∼1925) 박사의 도움을 받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 머무르며 1년여간 학업을 이어갔다.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은 수십 장의 편지와 한국 물건으로 남아 있다. 140년 전 인연을 기억하고자 문을 연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의 한국실, ‘유길준 갤러리’가 새 단장을 마치고 내년 5월부터 관람객을 다시 맞는다.
보스턴 근교에 위치한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은 미국 내에서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시설로 꼽힌다.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업가들이 뜻을 모아 1799년 설립한 박물관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한 박물관이다. 관장을 지낸 모스 박사가 수집한 각종 민속품, 독일 출신 외교관 묄렌도르프(1847∼1901)를 통해 산 유물, 유길준의 물품 등을 모두 합치면 한국 관련 유물만 1,800여 점에 달한다. 조선 후기 회화부터 의복, 악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린다 로스코 하티건 박물관장은 “특정 인물의 이름을 갤러리에 붙이는 것은 특별한 사례”라며 ‘스페셜’(special)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2003년 문을 연 ‘유길준 갤러리’가 새 모습을 선보이는 건 2007년 이후 약 18년 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으로 지난해 박물관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김지연씨를 한국 담당 큐레이터로 채용하면서 전시실 재단장에도 속도가 붙었다. 약 260평방미터 공간에 들어서는 한국실에는 조선시대 나전칠기와 도자기, 불화 ‘감로도’ 등 80여 점을 선보인다. 한국에서 보존 처리를 마친 활옷과 병풍도 소개한다. 김지연 큐레이터는 “기존 한국실 전시가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새 공간에서는 전통 사회에서 개화기를 거쳐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미술과 접목하려는 것도 새로운 시도다. 박물관은 최근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작품도 구입했다고 한다. 김지연 큐레이터는 “한국실 개관에 맞춰 정연두·양숙현 작가와 협업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정연두는 현실과 이미지, 실재와 환영 등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사진·영상 및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다. 양숙현은 기술 미디어를 주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온 미디어 아티스트다. 하티건 관장은 “박물관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 주목하는 공간”이라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