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혐의 중 사기 등 배심원단 10가지 ‘유죄’
지난 2021년 3월 파생금융상품 ‘마진콜’ 사태로 월가를 뒤흔든 한인 투자가 빌 황(60·한국명 황성국)씨가 10일 법원에서 결국 유죄 평결을 받았다.
뉴욕 맨해턴 형사법원에서 진행된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이하 아케고스) 설립자 황씨의 사기 등 혐의 사건 형사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단은 이날 사기와 공갈 등 11개 중 10개 혐의에 대해 “죄가 있다”고 평결했다고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황씨와 함께 기소된 패트릭 핼리건(47) 아케고스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사기와 공갈 등 3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21년 3월 국제 금융계를 흔든 마진콜 사태 사건의 핵심 피고인이다.
아케고스는 파생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거래(CFD) 계약을 통해 보유자산의 5배가 넘는 500억 달러 상당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아케고스가 자금을 빌려 투자한 주식이 급락하게 되자, 증거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마진콜 상황이 발생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발 빠르게 담보주식을 블록딜로 내다 팔면서 손실을 최소화했지만, 다른 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는 손실이 확산했다. 당시 전체 손실액수는 1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당국은 집계했다. 특히 스위스의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아케고스와의 거래로 맺은 손실 규모가 55억 달러에 달했고, 이 충격 여파로 위기설에 휩싸이다가 결국 자국 경쟁사인 UBS에 인수됐다. 황씨의 재산도 1억 달러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뉴욕 검찰은 2022년 황씨 등을 기소하면서, 이들이 금융회사를 속여 거액을 차입한 뒤 이를 자신들이 보유 중인 주식에 대한 파생상품에 투자함으로써 주가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아케고스의 레버리지 비율은 한때 1,000%에 달하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아케고스 사업을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불안정한 계획)이자 거짓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반면 피고인들은 월가의 일반적인 차입(레버리지) 투자 기법일 뿐 “투자과정에서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로이터는 피고인들이 각 혐의에 대해 최대 20년형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NYT도 “이날 검은 양복을 입고 법정에 앉아 있던 황씨는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앨빈 핼러스타인 판사는 오는 10월28일 선고 공판을 열 예정이다.
UCLA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런 MBA 과정을 마친 빌 황씨는 2001년 헤지펀드계 전설이자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이끈 줄리언 로버트슨의 도움으로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출범했다. 황씨의 회사는 월가의 아시아 전문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2012년 홍콩 투자와 관련해 내부자 거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는 결국 4,4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사건을 종결해야 했다. 이후 2013년 그는 개인투자회사인 ‘아케고스’를 설립했으나 마진콜 사태로 거액 손실을 유발한 뒤 기소됐었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은 황씨가 오랫동안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돈벌이를 하는 ‘기독교 자본가’로 여겨져 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그가 만든 ‘그레이스 & 머시 재단’이 아케고스가 무너진 이후 전직 직원들의 피난처가 됐으며 2022년 말 현재 재단의 임원과 최고 연봉 직원 중 9명이 아케고스 출신이라고 전했다.
세금보고 기록에 따르면 몇몇 직원들은 5억2,800만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는 재단을 감독하는 업무 댓가로 50만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리디머 장로교회의 앤드류 필드 목사는 “황씨가 종교를 방패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충성스러운 황씨의 친구들은 그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