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이 아마존과 애플·페이스북 등 독과점을 형성한 거대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낸 지 2주 만인 20일(현지시간) 미 법무부가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이 애플 같은 제조사와 짬짜미해 스마트폰에 자사 애플리케이션을 선탑재하거나 검색 시 구글을 우선 이용하도록 설정해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을 막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이날 기소장에서 “구글은 인터넷 검색 시장 점유율이 무려 88%로, 모바일 시장에서 경쟁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며 “경쟁을 무력화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줄이며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명시적으로 기업 해체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사업 일부 매각과 사업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구조적 개편 방안을 촉구했다.
이날 법무부는 추가 반독점 소송 가능성도 시사했다. 제프 로젠 미 법무부 차관은 이날 “구글 소송은 획기적인 사건”이라면서도 “이것이 중단점(stopping point)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 진행 과정에 따라 다른 IT 기업에도 파장이 미칠 가능성을 예고한 대목이다.
법무부는 구글이 애플에 매년 최대 110억달러(약 12조4,000억원)를 제공하면서 아이폰에 탑재된 사파리 브라우저 검색이 구글로 이뤄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WSJ는 “구글이 애플의 인기 있는 스마트폰 검색 트래픽에 의존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는 소비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구글 검색 결과와 관련 광고가 자동으로 제공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구글과 애플의 이 같은 관계가 소송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18년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가 만나 검색 시장에서의 매출 성장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를 고려하면 소송 결과가 구글과 애플이라는 두 거대 IT 업체의 매출과 수익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쓰는 업체들은 기본적으로 구글의 크롬 앱이 깔려 있다. 구글이 스마트폰의 양대 축인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를 모두 장악한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연방정부의 소송은 구글의 검색엔진 이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맺어진 합의들에 달려 있다”며 “예를 들어 구글은 삼성과 LG를 포함한 기기 제조사들과의 공식적인 합의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구글 검색을 기본으로 설정하도록 강요하고 다른 업체들의 접근성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소송전의 결과에 따라 구글과 애플은 수익원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삼성·LG와 구글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도 이목이 쏠릴 수 있다.
다만 최종 판결까지는 최소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모건스탠리의 시니어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노왁은 “소송은 몇 개 분기가 아닌 수년이 걸리는 일”이라며 “앞으로 구글이 핵심제품을 어떻게 바꿀지, 재정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에 이날 알파벳의 주가는 전날보다 1.38% 상승 마감했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IT 업체를 길들이기 위해 서둘러 소송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도 흘러나온다. 컴퓨터 및 통신산업협회는 “독점법은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소비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술 기업들에) 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조치를 취하라고 하는 상황에서 소송이 제기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IT 업체들의 독과점이 심각하며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가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앞서 유럽연합(EU) 반독점기구는 지난 3년간 온라인 검색 시장과 안드로이드 OS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구글에 총 82억5,000만유로(약 11조1,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