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인기 그룹 '딕훼밀리' 리더를 지낸 드러머 서성원이 LA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별세했다고 주변 인사들이 전했다.
가수 위일청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서성원 님이 오늘 미국 LA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돌아가셨다"며 "저한테는 선배이자 선생님 같은 분이셨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에 계신 유가족분들과 40여년을 함께 했던 딕훼밀리 식구들, 그리고 서성원 님을 알고 지내셨던 모든 지인들, 나아가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라는 국민가요를 알고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고 썼다.
딕훼밀리 멤버인 가수 이천행도 1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고인이 코로나19로 LA에서 병원 입원 치료를 받다 한국시간으로 전날 별세했다고 전했다.
딕훼밀리는 1972년 7인조로 결성돼 1974년 1집, 1976년 2집을 발매했다.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 '흰 구름 먹구름', '작별' 등을 히트시키며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다.
순수한 노랫말에 친근한 멜로디가 특징이며, 특히 '또 만나요'는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익숙한 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외래어를 배척하는 정부의 언어순화 정책 탓에 '서생원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그룹의 원년 멤버로, 드러머이자 리더를 맡았다. 그는 딕훼밀리 활동을 접은 이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은 1980년대 '날개'로 사랑받은 가수 허영란이다.
이천행은 고인에 대해 "실력도 있고 사람도 아주 좋고, 추진력도 있었던 음악인이었다"며 "지난 1월에 LA에 공연하러 가서 만났을 때는 굉장히 건강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1970년대 그룹사운드는 청년 문화를 주도했다"며 "당시까지 그룹사운드가 주로 번안곡이나 미국적인 사운드를 구사했다면, 서성원이 주도한 딕훼밀리는 창작곡 위주로 국내 히트가요를 많이 탄생시켰다. 굉장히 친근하면서도 쉬운 멜로디로 젊은이들 문화를 리드하며 우리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