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출신 시애틀 90대 노인
불교 제반문 경판 한국에 전달
한국에서 미국으로 반출된 뒤 65년 동안 시애틀에 잠자고 있던 한국 문화재인 경판(經板)이 한국 품으로 돌아갔다.
미 해병대 중위 출신으로 현재 시애틀에 살고 있는 리다드 B 락웰(92)씨는 지난 18일 시애틀을 찾은 한국 능인사 주지 지상스님과 국회 문화체육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에게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신흥사 소장 경판 1점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된 신흥사 소장 경판은 사찰에서 행해지는 천도의식과 의례 등을 담은 제반문(諸般文) 87~88장을 양면에 판각한 목판이다.
1954년 10월 한국 속초에 배속돼 주둔하고 있었던 당시 미 해병대 중위 락웰씨는 부대원들과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신흥사에 들렀다. 그는 당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신흥사 경내를 살펴보다 파괴된 전각 주변에서 경판 1점을 수습한 뒤, 같은 해 11월 이를 갖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락웰씨는 이를 자택에 보관해왔으나, 이 경판이 한국 중요 역사자료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반환의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던 그는 지난해 1월 미 해병대 장교 재직(1953~1954)시절 한국에서 직접 촬영한 속초시 옛 사진자료(35㎜ 컬러 슬라이드필름) 등 279점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혔고, 이 과정에서 경판 소장 사실도 알렸다.
속초시립박물관은 지난해 3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락웰씨 소장 기록사진과 경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등 조사 및 환수업무를 요청했다.
재단은 락웰씨가 이메일로 보내온 경판 사진을 전문가에 의뢰해 분석하는 한편 재단 소속 미국사무소 직원을 락웰씨에 보내 경판을 확인했다. 신흥사는 지난 2월 이 같은 소식을 재단으로부터 전해 듣고 능인사 주지 지상스님을 시애틀에 보냈고, 2017년 문정왕후 어보 환수를 비롯해 미국 내 신흥사 불화 환수활동도 적극 나서고 있는 안민석 의원도 시애틀을 찾아 전달받았다.
지상스님과 안민석 의원은 이 자리에서 락웰씨에게 신흥사 주지 명의의 감사패도 전달했다.
원래 신흥사에 전해오던 <제반문> 경판은 전체 88장으로 구성된 총 수량 44점 내외로 추정되지만 6ㆍ25전쟁을 전후로 대다수가 사라져 현재 신흥사에는 14점만 소장하고 있다. <제반문> 경판은 17세기 조선시대 인쇄술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당대 사찰의 경전 간행 사실과 당시 승려들의 생활상, 불교의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시애틀=서필교 기자
락웰(가운데)씨가 안민석 의원과 지상 스님에게 경판을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