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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김장호 우체국'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19 13:15:53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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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LA미주본사 논설위원)

 

미국의 우체국은 3만 개가 넘는다. 전 미국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인구 4,000명을 기준으로 나눠지는 센서스 트랙에 우체국은 있으나 은행이 없는 곳이 75%에 이른다. 시골 우체국에 구좌 개설 등 일부 은행업무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우체국 은행(postal banking)’ 이야기가 지금도 나오는 이유다. 

우체국이 없었다면 미국의 신문이 오늘에 이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인터넷 시대에 감이 오지 않을 지 몰라도, 생각해 보니 신문 발송의 상당 부분을 우편에 의존하던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많은 신문의 기사 마감과 인쇄는 우체국 발송시간에 맞춰 정해졌다.

우체국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는 두텁다. 당첨 로또를 보통우편으로 복권국에 접수시켰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45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를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우편으로 보낸 보석상도 있다. 지금 가치로 3억5,000만달러쯤 된다고 하는데 당시 우편요금으로 2달러44센트를 냈다. 지난 1958년에 있었던 일로, 따로 100만달러 보험에 들었다고는 하나 우체국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신대륙에 우편 시스템이 정착되는 과정에 당국의 관리도 엄격했다. 우편물을 훔치면 초범은 공개 채찍형에다 10년이내 징역, 재범은 최고 사형이 가능하던 때도 있었다. 남북 전쟁 때는 추운 겨울 아침에 부인들이 우체국 앞에 줄을 섰다고 한다. 전선에서 온 남편의 편지를 우체국에 가서 직접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렌지카운티의 한 우체국이 지난 달 한인 청년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김장호 우체국(1400 N. Kraemer Bl. Placentia)’. 이라크 전에서 전사한 병사다. 그때 만 20살, 사진을 보면 소년병처럼 앳되다.

17년 전 리버사이드의 국립묘지에서 엄수됐던 고 김장호 일병의 안장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새롭다. 함께 갔던 TV 카메라 기자가 저녁뉴스 용으로 편집하는 영상을 지켜보면서 눈물에는 온도 차가 크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자식을 앞세워 보내는 것은 세상 부모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풀장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 생일 파티에 갔다가 갱 총격으로 숨진 10대 딸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뜨거웠던 그 눈물을 그 때 다시 봐야 했다.

‘김장호 우체국’ 지정은 플라센티아가 지역구였던 영 김 연방하원의원의 발의로 이뤄졌다. 명명식에 참석한 고 김 일병의 아버지 김섭 장로와 어머니 김상순 목사, 연년생 누이 미셸 등 가족들은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이 우체국은 살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늘 다니던 데라고 한다. 떠난 아들은 이름으로나마 살던 동네로 돌아왔다. 얼마 전 아버지 김섭씨를 만났다.

그는 떠난 자식을 가슴에 묻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간 맡겨졌던 아들을 이제 돌려 드린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위로부터의 특별한 위로 때문에 가능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자녀를 이라크 전에서 잃은 다른 한인 가족과 교유한 적이 있다. 이 때 알았다. 이런 치유가 없으면 세월이 지나도 자식을 잃은 비통함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왜 내게”, “왜 하필 우리에게”라는 마음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들이 전사한 2005년은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 파악이 최대 관심사였다. 마약이나 사고로 죽는 젊은이도 얼마나 많은가. 아들의 죽음은 동성무공훈장과 퍼플 하트 등이 말해 주듯 미국이 위로와 예를 다하는 명분있는 희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내려 놓으려 애썼다. 

마지막 남은 비통함 한 톨을 마저 지워 내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자 아버지이기 때문에 꾹 눌러 왔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가 겪은 아픔은 다른 이들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작게 보이게 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바그다드 인근에서 험비를 운전하고 가던 아들은 동료 병사와 함께 사제폭탄의 공격으로 숨졌다. 험비는 뛰어난 성능에 비해 장갑 기능이 부실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던 미군의 주력 차량. 현장은 참혹했고 시신은 흩어졌다. 장례식 석 달 뒤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시신 일부가 마저 전달됐다. DNA 검사를 통해 모았다고 했다. 묘지에 함께 묻었다. 전사 소식은 군인 2명이 집을 방문해 부모에게 알렸다. 장례 일정 내내 전담관이 최선을 다했다. 미군이 강군인 이유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들의 전사를 계기로 참전 군인의 사망 원인도 찾아봤다. 자살이 많았다. 전쟁이 병사들에게 안겨주는 트라우마는 상상 이상이었다.

‘김장호 우체국’ 지정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캘리포니아 출신 연방 하원의원이 모두 서명해야 발의될 수 있는 사안이다. 동료 의원들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 내는 정치력이 필수적이다. 영 김 의원은 ‘김장호 우체국’ 법안을 1년여 전인 지난해 2월 발의했으나 막상 연방 상하원 통과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은 김 의원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재선이 확정된 후 이뤄졌다. 시사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안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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