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아틀란타 한인교회 담임목사>
모래시계는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미래의 남은 시간'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생시계'입니다. 역삼각형 원추 유리병 속에 담겨 있는 모래는 '현재의 시간'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또 다른 원추 삼각형 플라스크는 지나간 시간들을 보여주는 '과거의 무덤'입니다. 위에 있는 모래가 아래로 다 떨어지면 인생이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두 원추 삼각형 사이에 작은 유리관이 있습니다. 이 유리관은 현재와 과거가 맞닿는 공간입니다. 이 작은 관을 통해 모래알 같은 작은 시간들이 시나브로 빠져나갑니다. 마치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줄어드는 모래 알갱이는 아주 엄중하게 "너의 남은 시간을 계수하면서 살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모래가 한 알이라도 더 남아 있을 때, 좀 더 최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래시계는 중세 때,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설교를 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주책없이 설교를 무한정 오래해서 성도들을 재우거나, 피곤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쳐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모래시계를 자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수도사들도 이 모래시계를 보면서 빠른 흐름 속에서 사라지는 모래알 같은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시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늘로 시간을 알려주는 '아날로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숫자로 시간을 알려주는 '디지털 방식'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이 두 가지 시계의 공통점은 언제나 현재의 시간만을 알려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얼마의 시간을 소모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뭅니다. 과거와 미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현재의 시간에만 집중합니다.
쉬지 않고 오직 한쪽으로만 움직이는 시계는 우리들에게 “내일도 어김없이 똑같은 시간들이 주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착각을 부여합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시간의 일상성 속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갑니다. 새로운 시간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권리 의식은 매일의 삶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맞이하도록 방관합니다. 어쩌면 오늘로 삶을 마감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모래시계는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흐트러진 생각을 바로잡아 줍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과거의 시간들을 반성하고, 위에 남겨진 미래의 시간들을 바라보면서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작고 좁은 현재의 유리관으로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깊은 책임감을 절감하게 만듭니다. 모래 시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절대로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좋은 모래시계 하나를 구입해서 책상 위에 올려 놓기를 권합니다. 인생을 부지런 하면서도 지혜롭게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처리하는 겸손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