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에 대해 인신공격·즉흥 비난만 남발
집권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정책상 약점을 파고드는 대신 막말만 퍼붓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충동적 대응에 당내에서 불만이 분출하고 있다. 패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슷한 비방 전술로 이끌었던 2016년 대선 승리가 재연되기를 바라는 기색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뽑힌 해리스 부통령이 자리를 잡고 기세를 올린 몇 주 동안 인신공격과 즉흥적 비난만 남발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공화당원들이 정책에 집중해 줄 것을 간청하고 나섰다고 12일 보도했다.
더힐에 따르면 불법 이민과 경제 등 공화당이 유리한 정책 현안에 초점을 맞추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길 수 있다는 게 다수 공화당 인사의 생각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행동은 정반대다. 인도계 흑인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 정체성을 문제 삼은 것이나 그의 유세에 몰린 대규모 군중을 찍은 사진이 인공지능(AI)에 의해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한 것은 그들이 보기에 자충수다.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 보좌관을 지낸 브랜던 벅은 MSNBC방송에 “트럼프가 경제나 국경(불법 이민)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미친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측근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하다. 2021년 1월 의회 폭동 관련 의회 소환에 불응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편들다 4개월간 복역한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국장은 이날 팟캐스트에서 “트럼프가 정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해리스를 공격하면 경합주 유권자, 특히 여성의 해리스 지지가 상승한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고언했다.
무모해 보이지만 의도된 전술일 수도 있다. ‘아무 말’이나 악의적 비난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상대하며 구사한 기술이다. 주요 이슈로부터 관심을 빼앗고 방어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당시 민주당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에 싸움을 키울수록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해리스 캠프가 일단 방어보다 자체 메시지 발신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의 지속 공세에 말려들지 않고 이런 전략을 고수할 수 있을지가 난제라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분석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부메랑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멍청하다거나 인종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식의 발언이 경합주에서 여성이나 소수 인종 유권자를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다고 미국 CNN방송은 경고했다.
말이 지나치게 많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해리스 부통령은 몸을 너무 사리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공격 포인트로 잡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이 없어 언론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승세를 탄 상황에서 굳이 실수 위험에 노출될 필요가 없다는 게 해리스 측 인식이라고 CNN은 전했다. 불가피하다면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와 공동 인터뷰를 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복귀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X 최고경영자(CEO)와 가진 대담 생중계에서 남다른 친분도 과시했다. 한때 ‘트통령(트위터+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트위터에서 영향력이 컸지만, 2020년 대선 불복 이후 ‘폭력 선동 위험’으로 퇴출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해 ‘공개 지지자’ 머스크 CEO가 화려한 복귀 무대를 깔아준 모양새다.
12일 X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 내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반대 진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허위 주장을 되풀이했다. 머스크 CEO는 시종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한때 1,300만 명이 접속해 지켜본 이번 대담에 대해 AP통신, 로이터통신 등은 “트럼프 2기에 대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고 평소처럼 정제되지 않은 가짜 주장과 인신공격을 내놓는 기회만 제공했다”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