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새 정강정책 보니
11월 대선을 4개월 앞두고 공화당이 지난 8일 채택한 ‘당 강령(Party Platform)’은 대권 탈환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을 집대성한 ‘미국 우선주의 2.0’이라고 볼 수 있다. ‘정통 보수’라는 공화당의 가치는 자취를 감춘 대신 트럼프의 과격한 공약들이 대거 반영되면서 사실상 트럼프의 사당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2016년 공화당 강령보다 훨씬 더 국수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덜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16쪽짜리 공화당의 강령 서문에는 국경 봉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추방, 인플레이션 종식 등 경제·통상, 외교 안보, 국경 및 사회 분야 등에서 20개의 원칙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미국을 가장 지배적인 에너지 생산국으로 전환 ▲노동자를 위한 대규모 감세와 팁 면세 ▲미국산을 사용한 위대한 아이언돔(미사일방어체제) 구축 ▲현대화하고 강력한 군대 등이 대표적인 원칙으로 제시됐다. 서문에 이어 10개의 장(Chapter)에서 주요 이슈를 세분화해 정책 방향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강령은 “조 바이든의 외교정책은 미국을 덜 안전하게 했으며 전 세계에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면서 “공화당은 국제적 혼란을 끝내고 지정학적인 리스크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군의 현대화를 추진할 것이며 동맹에게도 공동방위에 대한 책임을 더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령은 “동맹국이 공동방위에 대한 투자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유럽에서 평화를 복구해 동맹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중동에서 평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경 봉쇄’ ‘사상 최대 규모 추방’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초강경 이민 정책이 여과 없이 반영됐는데 해외 주둔 미군을 불법 이민 대응을 위해 불러들일 수 있게 한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끈다. 강령은 “현재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수천 명의 군대를 우리 남부 국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포함해 침략을 막기 위해 모든 자원을 사용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는 불법 이민 문제에 대응할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한미군 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 실행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사회·문화 분야에 있어서는 진보 진영이 추진해온 성평등 및 다양성 정책을 철폐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령은 “우리는 남성들이 여성 스포츠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성전환 수술에 대한 자금 지원을 금지하며 납세자들이 지원하는 학교가 성전환을 촉진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은 다만 ‘연방 차원의 낙태 금지를 지지한다’는 기존 문구를 삭제해 다소 완화된 입장으로 선회했다. 대신 “헌법 14조에 따라 정당한 절차 없이 누구도 생명이나 자유가 부정돼선 안 되며 각 주는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문구로 대체했다. 이는 낙태 문제는 각 주가 결정해야 한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을 재확인한 것으로 올 11월 대선에서 여성 표심의 이탈을 막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