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줄면서 과점체제 강화
경쟁 하락, 항공 운임 인상되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가시화하면서 항공업계의 지각변동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양사 통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9부 능선을 넘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측이 2021년 1월 기업결합을 신고한 14개 ‘필수 신고국' 중 경쟁 당국의 승인이 남은 곳은 미국뿐이다. 과점 체제가 강화될 항공업계의 수익성 개선 기대감이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을 떠안게 될 대한항공의 경영 부담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선 양사 합병으로 국내 항공 시장은 과점 체제 강화가 예측된다. 사업자 숫자가 줄어들면서 경쟁 강도도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항공 운임을 올리려는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부담이 줄어든다. 이 경우 살아남은 항공사들은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한항공 측은 “항공 운임 인상은, 정부의 규제를 받으며 항공 시장에서 수많은 외항사와의 무한 경쟁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 이후에도 쉽게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통합으로 국내 대형항공사(FSC)는 한 곳만 남는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시장의 사업자 숫자도 줄어든다. 우선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세 곳이 하나로 합쳐질 것으로 보인다.
LCC 시장도 ①통합 LCC ②티웨이항공 ③제주항공 3강 체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EC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유럽 노선의 슬롯(시간당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일부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슬롯을 LCC인 티웨이항공에 넘기는데 항공기 대여, 조종사·승무원 파견까지 예상된다. 또 미국 법무부(DOJ)의 양사 통합에 따른 경쟁 제한 우려에 미주 5개 여객노선(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의 슬롯도 국내 LCC인 에어프레미아로 넘길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 측은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해외 경쟁 당국과 협의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형항공사든 저비용항공사든 사업자 숫자가 줄면 과점 업체가 되고 경쟁의 강도가 이전보다 약해질 것"이라며 "(항공 운임 인상을 통한) 항공사들의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①통합 LCC는 경영 효율화 ②티웨이항공은 장거리 노선 강화 ③제주항공은 중단거리 노선 강화에 각각 집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연구원은 “다만 이 세 회사 중 한 곳이 매각가 1조5,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을 가져가면 기업 규모가 두 배가량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주관사 UBS가 지난달 28일 예비입찰 접수를 마감했는데 제주항공을 비롯해 이스타항공(VIG파트너스), 에어프레미아(JC파트너스), 에어인천(소시어스) 등이 인수의향서(LOI)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통합 이후 주요 노선에서 중복 시간대 운영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복 노선의 운항 시간대를 분산 배치해 소비자의 탑승 스케줄 선택권을 넓힘으로써 외국인 환승 수요를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전했다. 또 세계 FSC 시장에서 몸집이 커지면 항공기 제작·임대사와 협상력도 커진다고 강조한다. 항공기를 이전보다 싼값에 들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양사 훈련시설 공유를 통한 조종사 양성 운영 효율화 ▲자체 정비 물량 증가로 인한 항공기 MRO(유지·보수·정비) 경쟁력 강화도 기대된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대한항공 측 전망 외에 달리 밝힐 입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항공우주정책대학원장은 “합병한 회사의 운항권은 줄어드는데 기재(항공기)와 인력은 사실상 그대로"라며 “덩치가 커진 만큼 새로운 경영 전략을 세우고 혁신하지 않는다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