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칩의 역사
많은 음식의 유래가 파고들어 가 보면 참으로 애매하다. 과연 누가 맨 처음 고안해 낸 것일까. 많은 인물과 사건이 얽혀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니 때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전 세계적인 과자이자 국내 생산 40년을 훌쩍 넘긴 감자칩 또한 이런 부류에 속한다. 나름 신빙성 있는 기원설이 영국과 미국발(發)로 각각 하나씩 있다. 영국발은 18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 윌리엄 키치너가 펴낸‘요리사의 지침서’에 감자를 얇게 썰어 튀겨내는 레시피가 실려 있으니 오늘날의 감자칩과 흡사하다. 미국발은 1849년 일라이자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이미 얇은 감자칩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당시‘뉴욕 헤럴드’의 기사가 이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 ‘문스 레이크 하우스’, 감자칩의 요람
이 두 기원설은 근거도 있고 믿을 만하지만 이제 소개할 이야기에 비하면 극적인 요소가 한참 떨어진다. 1853년 8월 24일, 미국 뉴욕주의 도시 새러토가 스프링스의 음식점 ‘문스 레이크하우스'에서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1794~1877)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미국의 소위 ‘올드 머니’ 가문 가운데 하나인 밴더빌트의 가주인 그는 음식에 딸려 나온 감자튀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두껍고 눅눅하고 소금간이 덜 됐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그는 감자튀김을 다시 주방으로 되돌려 보냈다.
미국 원주민과 흑인의 혈통이 섞인 셰프 조지 크럼(1824~1914)은 이 요구에 자존심이 상해 “본때를 보여주지!”라며 감자를 최대한 얇게 썰어 아주 바삭하게 튀겼다. 풍문에 의하면 포크로 집을 수 없을 정도로 얇게 튀기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원래 목적은 약을 올리는 것이었건만 웬걸, 밴더빌트는 그렇게 튀겨 낸 감자튀김을 좋아했다. 그렇게 오늘날의 감자칩이 탄생했다.
갑부와 성깔 있는 셰프가 얽히다 보니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죽하면 1976년 잡지 ‘아메리칸 헤리티지’는 크럼을 ‘튀김의 에디슨’이라 추켜세우기도 했다. 극적인 요소 덕분에 명성을 얻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 기원설은 짜 맞춘 티가 많이 난다. 일단 크럼의 감자튀김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이 밴더빌트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밴더빌트의 전기로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 T.J. 스타일스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게다가 감자칩이 크럼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 적도 없다. 오늘날로 치면 ‘셀러브리티 셰프’ 격의 인기를 누렸던 크럼이었지만 농어나 자고새 요리 등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1914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나온 부고에서도 감자칩은 ‘발명했다더라’ 정도로만 언급됐다. 그런 가운데 3년 뒤인 1917년 한 여성의 부고가 등장한다. 103세에 세상을 떠난 캐서린 앳킨스 윅스로, 진짜로 감자칩을 고안해 낸 사람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윅스는 크럼의 누나였다. 그는 오빠와 함께 문스 레이크하우스의 주방에서 일했다.
이렇게 윅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감자칩의 기원설 또한 두 갈래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크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자튀김에 불만을 품은 손님을 위해 얇게 썰어 튀겼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수로 그렇게 썬 감자를 기름에 떨어뜨렸다가 감자칩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호텔 사업가 하이람 S. 토머스도 '감자칩 발명가'로 등장했다. 1907년 부고엔 토머스가 ‘새러토가 칩’의 발명가란 주장이 실렸다. 그 역시 문스 레이크하우스를 10여 년 운영한 이력이 있다. 다만 그는 크럼이나 윅스보다 40년 뒤에 감자칩을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누가 진짜로 고안해냈든 감자칩이 문스 레이크하우스가 있던 새러토가 스프링스 지역을 통해 대중화되고 인기를 누린 것만은 확실하다. 20세기 중반까지 감자칩이 ‘새러토가 칩스’라는 이름으로 팔린 배경이다.
■요리사가 만들던 고급 요리
새러토가 칩스로 팔린 감자칩은 초기에 미식의 대상이었다. 주로 호텔에서 고급 요리의 곁들이로 나왔다. 부유한 가문에서는 고용한 요리사에게 감자칩을 만들게 하고는 티파니의 은식기에 담아 먹기도 했다. 이는 감자칩이 당시 지녔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튀긴 음식은 산패하기 쉬웠다. 대량생산이나 장기간의 보관 및 유통이 불가능했던 탓이다.
감자칩이 차츰 대중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을 때도 약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무통이나 유리 용기에 담겨 무게로 달아 팔다 보니 바닥이 보일 때쯤이면 감자칩은 눅눅하고 다 부스러져 있었다. 감자칩이 본격적인 공업화와 대량생산의 기회를 맞은 건 1920년대에 들어서였다. 간호사이자 변호사인 사업가 로라 스쿠더가 파라핀지 두 겹을 합쳐 감자칩을 개별 포장할 수 있는 종이 봉지를 개발했다. 이를 발판 삼아 셀로판과 글라신지 포장이 개발되면서 칩은 개별 포장과 장기 유통 및 보관이 훨씬 수월해졌다. 더불어 감자칩 생산 또한 훨씬 더 효율적으로 거듭났다.
■차에 싣고 다니며 대중화
감자칩은 1930년대로 접어들며 본격적인 브랜딩의 날개를 달았다. 1931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출신인 허먼 레이(1909~1982)는 차에 감자칩을 싣고 남부 전역을 누비며 감자칩을 팔기 시작했다. 수완이 좋았는지 본격적으로 유통 사업을 확장한 그는 몇 차례의 생산 업체 인수 합병을 통해 1944년 '레이스'(Lay’s) 감자칩을 출범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국적 스낵 기업 프리토레이(Frito-Lay)의 '절반'이 바로 그 '레이스'다.
생감자를 튀겨 만든 건 아니지만 바로 그렇기에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감자칩 브랜드는 '프링글스'다. '프링글스'는 잘 부스러지며 눅눅하고 기름진 감자칩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됐다. 1956년 미국 생활용품 기업 'P&G'는 화학자 프레드릭 J. 바우어에게 새로운 감자 과자 개발을 맡긴다. 감자칩의 물리적인 약점을 극복해 공기 충전 포장이 필요 없는 과자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바우어는 2년 동안 프링글스의 모양과 원통형의 포장 용기를 개발했지만 정작 과자 자체를 먹을 만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갔다. 프링글스가 세상의 빛을 본 건 1960년대 중반이다. P&G의 또 다른 연구원인 알렉산더 리에파가 바우어의 연구를 이어받아 프링글스의 맛을 다듬었다. 그래서 프링글스의 특허에는 리에파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1968년부터 본격 생산된 프링글스는 1975년에는 미국 전역으로 진출했다. 1991년에는 전 세계로 유통망을 넓혔다. 생감자를 썰어 튀긴 음식이 아니었기에 프링글스의 정체성은 법적 검토의 대상이 됐다. 1975년 미국 식약청은 ‘건조 감자로 만든’이라는 전제가 붙을 때만 프링글스를 ‘감자칩’이라 부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제품명이 늘어지는 게 싫었던 P&G는 결국 프링글스에 감자 ‘크리스프(crisp)’라는 명칭을 붙였다.
■ ‘88올림픽’ 부터 활기 띤 국내 시장
국산 감자칩이 등장한 건 1980년 7월이다. 1973년 삼양라면이 ‘감자칩’을 내놓았지만 원물을 튀긴 제품은 아니었다. 농심은 1979년 봄부터 안양공장에 생산라인을 설치하고 제품 개발을 시작해 ‘포테토칩’을 내놓았다. 이후 10년 동안 자리를 다져 나간 결과 1991년에는 현재의 아산공장으로 감자칩 생산라인을 이전 및 확장했다. 이후 1988년 오리온이 ‘포카칩’을 출시하며 감자칩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워낙 온갖 맛의 바탕 역할을 잘하는 감자칩인지라 세월을 거치며 여러 응용 제품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제품을 하나 꼽자면 ‘허니버터칩’이 있다. 해태제과와 일본의 가루비의 합작사인 해태가루비가 2014년 출시한 허니버터칩은 오랫동안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소위 ‘단짠’ 유행의 물꼬를 튼 것도 이 과자였다. 요즘 감자칩 업계는 더 얇게 만드는 두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오리온이 2021년 출시한 '콰삭칩'이 0.8㎜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참고로 감자칩은 햇감자가 나오는 6~11월에 가장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