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개입·의회폭동 등 민·형사 면책권 각각 기각당해
도널드 트럼프(사진·로이터) 대통령이 2020년 대선결과를 뒤집기 위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민·형사 책임을 면하게 해달라는 청구를 법원에서 모두 기각당했다. 재임기 대통령의 공무상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워싱턴 DC 연방 지방법원의 타냐 처칸 판사는 이날 “전직 대통령들은 연방 형사 책임에 대해 특별한 조건(면책 적용)을 누리지 못한다”고 지난 1일 결정했다. 처칸 판사는 “피고인(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행한 범죄 행위에 대해 연방 수사와 기소, 유죄판결,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항소하고 대통령의 권한 범위 문제를 대법원까지도 끌고 갈 수 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법률팀은 내년 3월부터 재판이 시작될 그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2024년 대선 후보자 경선 선두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행위로 기소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대통령이 공무상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면한다고 보지만 재판관들은 면책이 형사 소추에도 적용되는지 고심한 적은 없다. 잭 스미스 특별검사팀은 헌법이나 판례에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로 기소될 수 없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스미스 특별검사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 수사를 이끌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가 선거 사기라는 거짓을 미국인에게 유포하고 대선 결과 뒤집기 및 개표 방해 등을 시도했다는 혐의로 올해 8월 기소됐다. 이에 앞서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월6일 지지자들에게 의회 난입을 부추겼을 당시 “대통령 후보라는 개인 자격”으로 행동했다고 결론짓고, 소송을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소송은 의회 경찰 2명과 민주당 의원 10여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며 폭동을 촉발하는 바람에 자신들이 피해를 보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다. 원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인증을 막으려고 극우 단체와 폭동을 모의해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동 당일 지지자들에게 한 발언은 공무 성격이며 대통령의 면책특권 때문에 소송을 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리 스리니바산 판사는 “첫 임기인 대통령이 재선에 나설 경우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는 캠페인은 대통령으로서의 공적 행동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다만 이번 판결은 소송을 계속 진행하는 것일 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폭동에 대해 책임이 있는지 등 소송 본안은 다루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으로 소송에서 자신의 특정 발언이나 행위가 면책특권 대상이라고 여전히 주장할 수 있다.
앞서 미국 언론은 이 판결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목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제도라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려고 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민·형사 소송과 같은 사법 리스크가 실제로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갖은 성추문과 경제범죄 정황, 그에 따른 법정 공방에 굴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지지율이 상승하는 ‘테플론 정치인’(허물에 대한 비판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