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후면 종이 수표가 20세기를 상징하는 마지막 아이콘이 될 것 같다. 종이 수표도 유선 전화와 플로피 디스크가 사라졌던 길을 따라가 가고 있다. 20세기에 자주 볼 수 있던‘수표는 우편으로 배달됩니다’라는 안내문도 더 이상 듣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종이 수표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곳이 있을까? 시카고 독자 한 명이‘종이 수표를 사용하는 미국인 숫자는?’,‘그들은 누구이며 어디에 거주하나?’,‘종이 수표 사용 트렌드는?’이란 질문을 보내왔다.
‘크레딧·직불카드’이어 모바일 결제앱에 치여
‘대형공사·자선·세금납부’등은 수표 사용 높아
수퍼마켓에서 수표 쓰면 주위서 눈총받기 십상
백인·노년층 사용률 높고 아시안은 카드 선호
트렌드부터 알아보자면 종이 수표 사용은 내리막길이다. 밀레니엄 시대(2000년도)로 접어들 당시 종이 수표 사용만이 ‘Y2K 버그’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처럼 여겨졌다. 이로 인해 현금과 함께 종이 수표 사용이 갑자기 증가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 10명 중 6명은 종이 수표로 선물을 구입하고 고지서를 납부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숫자는 20명 중 1명으로 급감했다. 종이 수표의 몰락은 빠른 속도로 추락하다 사라지는 유성에 비유할 수 있다.
2003년까지만 해도 연방준비제도(FRB·연준)는 민간 수표 처리 센터 45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수표 사용이 감소하고 연준이 장기 ‘전자 시스템’을 추진하면서 10년 뒤 수표 처리 센터는 애틀랜타 1곳으로 줄었다. 연준이 종이 수표 사용이 감소할 때까지 집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이 수표 사용이 언제 정점을 찍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현금 사용도 수표처럼 빠른 속도로 감소할 경우 Fed의 거대한 현금 처리 시스템은 대규모 개편이 불가피하다.
10년 넘게 미국인 결제 방식을 조사해 온 케빈 포스터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연구원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종이 수표 사용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라며 “현금도 수표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포스터 연구원은 매년 가을 다른 지역 연방준비은행과 공동으로 미국인 5,000명의 결제 방식을 조사하고 있다. 설문 조사 대상자에게 현금, 크레딧 카드, 암호화폐 등 결제 수단을 포함해 최근 사용한 지불 수단의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조사 결과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나타났다. 2017년까지만 해도 현금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결제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직불 카드가 현금 사용을 앞질렀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고 현금 등 물품 직접 전달이 덜 선호되면서 현재 현금 사용 빈도는 5년 전에 비해 훨씬 줄었다. <도표 참조>
크레딧 카드의 빠른 부상으로 종이 지폐 사용은 더욱 밀리고 있다. 2022년 직불 카드를 제치고 가장 많이 사용된 크레딧 카드는 현재 미국 내 전체 거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벤모와 젤 등 결제 앱이 결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낮지만 팬데믹 기간 사용이 급증했고 여전히 증가세다. 직불 카드의 아날로그 버전인 종이 수표가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
2020년과 2021년 실시된 조사에서 미국인 중 약 57%는 전달 수표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표를 사용했다고 답한 미국인의 사용 빈도도 매우 낮았다. 수표는 주로 500달러가 넘는 거액 결제에 사용됐지만 사용 비율은 14%로 여전히 낮았다.
나이별로는 은퇴 연령대 미국인 중 약 4분의 3이 여전히 수표 사용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대학생 나이대 젊은 미국인의 수표 사용률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는 태평양 연안 지역과 중서부 지역에서 수표 사용이 많았고 동부와 남부에서는 드문 것으로 조사됐다.
비즈니스나 상점 유형별로도 미국인의 수표 사용 여부를 알 수 있다. 작년 조사에서 공사업체, 자선단체, 세무 당국, 건물주 등 많은 비즈니스가 여전히 수표를 주요 결제 수단으로 받고 있었다. 하지만 수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돈을 지불하기 위해 수표를 썼다가는 뒤 사람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 쉽다. 조사에서도 수퍼마켓 등 식료품점, 패스트푸드 식당, 교통 요금을 지불하기 위해 수표를 쓰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인종별로 수표 사용 트렌드에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백인 중 절반이 넘는 51%는 전달 수표를 사용했을 정도로 백인이 수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반면 흑인의 수표 사용률은 25% 미만으로 전체 인종 중 가장 낮았다. 히스패닉과 아시안의 수표 사용률은 각각 31%와 37%로 백인과 흑인의 중간이지만 흑인처럼 사용률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백인의 수표 사용률이 타인종보다 높은 이유는 인구 통계적 특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백인은 전 연령, 소득, 교육 수준에 걸쳐 높은 수표 사용률을 보이고 있고 흑인은 이와 정반대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백인과 흑인 수표 사용률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흑인들은 과거 은행 시스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불과 2년 전인 2021년까지도 은행 계좌가 없는 흑인은 백인의 5배를 넘었다. 흑인 가구 10곳 중 1곳은 은행 계좌가 없는 상태로 흑인이 수표나 직불 카드보다 현금을 더 자주 사용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흑인의 현금 사용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크레딧 카드 신청 거절률이 높기 때문이다. 연준에 따르면 2021년 흑인 크레딧 카드 신청자 중 약 46%는 카드 발급이 거절됐거나 신청 크레딧보다 낮은 크레딧을 승인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백인의 경우 크레딧 카드 신청 거절률이 22%로 흑인의 절반에 그친다.
히스패닉도 수표보다 직불 카드와 현금 사용이 많은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백인은 직불 카드가 현금 사용을 대체하고 크레딧 카드 사용이 가장 많은 전반적인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아시안은 가장 특이한 결제 수단 사용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아시안의 크레딧 카드 사용 비율은 그들의 전체 거래 중 평균 60%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다.
불과 수년 전의 40%보다도 더 높아진 수치다. 크레딧 카드 외의 아시안의 다른 결제 수단 사용률은 10%를 넘지 않는다. 아시안의 크레딧 카드 사용률이 타인종에 비해 높은 것은 그들 재정적 필요와 특별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Fed 자료에 따르면 아시안 크레딧 카드 사용자 중 다음 달로 잔고를 넘기는 비율은 타인종에 비해 훨씬 낮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