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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도넘 에스테이트의 조각공원

지역뉴스 | | 2023-09-20 13:38:45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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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여행을 하는 이유는 맛있는 와인들을 현지에서 마시고픈 열망 때문이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 그리고 함께 어우러진 예술품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2000년대 이후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에는 거대자본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와이너리들이 엄청나게 멋있어졌다. 가족들이 운영하던 소규모 와이너리들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내노라하는 세계 재벌들이 비싼 땅을 몇백 에이커씩 사들여 지은 세련된 건축물과 최첨단 양조시설, 산과 굴을 파서 만든 자연셀라 등 한번 돌아보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지는 와이너리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이런 와이너리들의 공통점은 내부와 외부를 수많은 예술작품들로 꾸며놓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너리를 소유할 정도의 부호들은 아트 컬렉션에도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수집한 미술품을 방문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라 해야겠다. 어떤 곳은 웬만한 미술관보다 낫고, 다 둘러보는데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전문적인 곳들도 있다. 일례로 나파 밸리의 헤스 컬렉션은 아예 내부에 대단한 현대미술관을 지어놓아서 미술애호가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조각공원으로 유명한 소노마의 도넘 에스테이트(Donum Estate)를 방문했다. 사설 스컵처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독보적인 와이너리, 200에이커 부지 곳곳에 세워놓은 50여점의 작품 하나하나가 블루칩 작가들의 것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아이 웨이웨이, 루이스 부르주아, 린다 벵갈리스, 키스 헤어링, 로버트 인디애나, 안셀름 키퍼… 모두 대형 설치물이고 상당수가 장소에 맞춰 제작된 작품이라 자연의 풍경에 녹아든 예술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와이너리에 가까워지면 7미터 높이의 금속 하트조각 ‘러브 미’(리처드 허드슨 2016)가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나 보이고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 표면 때문에 가장 인기있고 상징적인 설치물이다. 테이스팅 룸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소녀두상 ‘사나’(자우메 플렌사 2015)가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하고, 건물 바로 앞에서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우리를 맞아준다. 

20세기의 위대한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2003)는 따로 단독 전시장을 지어 헌사하고 있다. 유명한 ‘거미’ 시리즈의 모태가 된 첫 작품이라니 특별히 모실 만도 하겠다. 이후 제작된 거미들에 비해 키가 작고 소박한 것이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365개의 금속 파이프로 만들어진 더그 에이큰의 ‘소닉 마운튼’(2019)은 숲속에 설치된 거대한 풍경, 바람결에 따라 울리며 오감을 건드리는 연주를 들려준다. 유에 민준이 만든 25개의 청동 ‘테라코타 전사들’ 사이에 서서 전사들처럼 귀를 막고 입을 한껏 벌려 웃는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 수백개의 금속막대를 세워 만든 가오 웨이강의 ‘미로’에 들어가 이리저리 숨바꼭질하다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귀하고 드문 경험을 선사해주는 도넘 에스테이트의 주인은 홍콩에 거주하는 앨런과 메이 워버그(Allan and Mei Warburg) 부부,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업가이며 글로벌 컬렉터다. 덴마크 출신의 앨런은 코펜하겐 대학에서 경영학을, 윈난성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1996년 중국에서 패션 비즈니스를 시작하여 단시간에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까지 7.0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갑부가 되었다. 그는 베이징 출신 아내 메이와 함께 2000년대 초 창작력이 폭발하던 중국 아티스트들에게 매혹돼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세계 화단에서 중요한 아트 컬렉터로 부상했다. 

2011년 매입한 도넘 와이너리는 투자의 일부였으나 차츰 이곳의 방대한 자연에 반해 와인과 예술과 풍경이 조화된 스컵처 컬렉션을 조성하기 시작,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공원으로 발전시켰다.

도넘 홈페이지에서 작품과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갔는데도 자연 속에 놓인 작품을 직접 마주했을 때, 그 경이로움은 특별한 것이었다. 조각품은 입체적으로 만났을 때에야 그 진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마주하는 물성과 형태, 주변 공기와 빛과 냄새가 교감하는 현장에서 인간과 자연, 예술과 와인, 땀과 열정을 반추했다. 

그런데 도넘 에스테이트는 조각공원이 아닌 와이너리이고, 와인 맛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소노마 지역 최초로 전체 포도밭이 오개닉 인증을 받은 이곳은 질 좋은 샤도네와 피노 누아에 특화된 와이너리로, 총 370에이커에 달하는 방대한 땅에서 7,000케이스밖에 생산하지 않을 정도로 퀄리티에 신경 쓰고 있다. 4종의 샤도네(75~80달러)와 10여종의 피노 누아(95~145달러), 그리고 로제와 스파클링 와인도 생산한다.

테이스팅과 투어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5개 종류가 있는데 가격이 100~500달러로 싸지 않고, 투어도 걷는 투어와 차량 투어가 있으므로 잘 선택해야 한다.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각자 마음대로 돌아볼 수도 없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겠다.     

9월도 중순이라, 포도밭에는 다 익은 포도송이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렸고, 와이너리들은 양조장 청소와 준비에 바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술 익는 마을의 풍경과 냄새가 지금껏 코끝을 간지른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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