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환자가 저체중일수록 정상 체중일 때보다 섬망(譫妄ㆍdelirium)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고령 환자의 섬망 발생과 관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주영 교수·고유진 강사 연구팀이 대규모 중환자 집단에서 체질량지수(BMI)가 섬망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다.
섬망은 정신 능력에 장애가 발생해 의식과 인지 기능이 급격히 변하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 있는 장소나 시간을 모르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간단한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섬망이 생기면 환자가 안절부절하고, 잠을 자지 않고, 소리 지르고, 주사기를 빼내는 행위, 환각, 초조함과 떨림 등의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섬망은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고령층에서 흔히 나타나며, 중환자실 환자 3명 중 1명이 겪을 정도로 중환자에게 흔히 발견된다. 중환자의 경우 섬망은 높은 사망률과 장기 입원 등 중대한 건강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그동안 선행 연구를 통해 영양실조와 근감소증이 섬망 발생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연구팀은 영양실조와 근육량 감소를 반영하는 지표인 BMI에 주목했다.
영양실조와 근육 소실은 염증 발생 및 뇌 혈류 공급 저하 등의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섬망과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디.
연구팀은 2013년 1월~2022년 4월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50세 이상 5,622명의 환자를 저체중과 정상, 과체중 및 비만 그룹의 BMI 범주로 세분화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2.9세였으며, 남성 비율이 60.1%로 여성(39.9%)보다 조금 더 높았다. 섬망 발생은 환자의 19.0%(1,069명)에게서 발생했다.
연구 결과, BMI가 18.5 미만인 저체중 환자는 섬망 발생률이 정상 체중(BMI 18.5~25) 환자들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저체중 환자들은 정상 체중 환자들보다 1.5배 이상 높은 섬망 발생률을 보였다(p<0.02). 반면 과체중과 비만 상태는 섬망 발생률과 큰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오주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중환자실 환자에서 체중과 섬망 발생 간 관련성을 조사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며 “낮은 BMI를 보이는 저체중 환자들에서 섬망 발생이 높게 나타난 점은 중환자에서 체중을 관리하고 저체중을 조절하는 것이 섬망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과체중과 비만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대이기에 일반적으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만, 고령인 특히 중환자에게는 저체중도 위험한 문제가 될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