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구입 여건이 작년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지만 실감할 정도는 아니다.‘제 살 깎아 먹기’식 과열 경쟁만 사라졌을 뿐 모기지 이자율은 더욱 올랐고 집값은 기대만큼 떨어지지 않아 내 집 마련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기만 하다. 특히 첫 주택 구입자의 경우 웬만한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주택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재정 전문 머니 매거진이 녹록지 않은 내 집 마련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높은 이자율·다운페이먼트 부담'
첫 내 집 마련… 뼈 깎는 희생 필요
◇ 집값 올라 다운페이먼트 더 필요
지난 2년간 내 집 마련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제프리 바워스는 지금 마치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여전히 이루지 못했고 2년간 배운 것은 주택 구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진 현실뿐이다. 바워스는 작은 집이라도 내 집을 가져보겠다는 희망으로 지난 5년간 구두쇠처럼 살면서 다운페이먼트를 차곡차곡 모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값이 점점 올라 더 많은 다운페이먼트가 필요했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은 바워스와 같은 첫 주택 구입자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시기였다. 이자율은 급등하고 매물이 부족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시기다. 레드핀에 따르면 전국 주택 가격은 3년 사이 무려 10만 달러나 급등했고 이로 인해 다운페이먼트 비율은 팬데믹 이전보다 60%나 높아졌다.
◇ 작년 바이어 중간 연령 53세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운페이먼트 마련은 더욱 힘들어졌다. 다운페이먼트 준비 기간이 길어지자 바이어의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어의 중간 연령은 사상 최고령인 53세로 전년도보다 무려 8세나 높아졌다.
첫 주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첫 주택 구입자의 연령도 고령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주택 구입자 중 첫 주택 구입자가 차지한 비율은 2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평균 연령은 1년 전보다 3세 많은 36세로 높아졌다.
◇ 다운페이먼트 소폭 하락
작년까지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올들어 조금 낮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택 시장이 냉각되면서 불필요한 과열 경쟁이 사라졌고 다운페이먼트 하락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레드핀에 따르면 올해 평균 다운페이먼트 금액은 5만 2,500달러로 작년보다 약 20%가량 낮아졌다.
주택 시장이 과열 현상에 경쟁적으로 다운페이먼트 비율을 올려야 했던 지난해의 경우 평균 다운페이먼트 금액이 6만 5,0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셰하야 보카리 레드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낮은 FHA 융자와 같은 정부 보증 융자로는 주택 구입이 쉽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이 올해 들어 개선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주택 가격 대비 다운페이먼트 비율은 지난해 5월 사상 최고 수준인 17.5%에서 올해 13.1%로 낮아졌다.
다운페이먼트 비율 하락이 반드시 반길만한 현상은 아니다. 낮은 다운페이먼트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대출액이 늘어나기 때문에 매달 내야 할 페이먼트 금액은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이다. 또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20% 미만인 경우 별도의 모기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적지 않은 부담이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낮을 경우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 젊은 바이어 점점 사라져
부동산 에이전트 리사 스미스가 일하는 뉴멕시코주 샌타페이 지역에서는 젊은 주택 구입자나 첫 주택 구입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1년 전 모기지 이자율이 치솟기 전까지는 많은 젊은 세대가 활발한 첫 주택 구입에 나섰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져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장기간 보유한 주택의 자산 가치가 많이 올라 높은 다운페이먼트와 이자율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 든 바이어가 현재 주택 시장의 주요 구입 층이다. 젊은 세대가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없으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첫 주택 마련에 뼈 깎는 희생 필요
올해 38세에 생애 첫 주택의 열쇠를 받아 쥔 새뮤얼 멧켈프는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 그간 퍼부은 노력을 생각하면 눈시울을 적실 정도다. 멧켈프는 3살짜리 쌍둥이 딸과 부인을 위해 2021년부터 내 집 마련에 나섰다. 집주인이 월 3,600달러에 달하는 렌트비를 또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을 계기로 멧켈프 부부는 어떻게 해서든 내 집을 장만하겠다고 결심했다.
부부는 마침 모아둔 현금이 조금 있었고 1년간 더 노력한 끝에 다운페이먼트 자금으로 7만 달러를 만들었다. 텍사스주 오스틴시 남부에 정원이 딸린 새집을 46만 5,000달러에 장만한 부부는 주택 구입을 위한 가계부를 별도로 작성했다. 모기지 페이먼트 부담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다운페이먼트 마련용 가계부를 준비해 생활비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다.
지난해 첫 주택 구입에 성공한 바이어들은 모두 멧켈프 부부와 같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해 첫 주택 구입자 10명 중 8명은 주택 구입을 위해 일종의 희생을 치러야 했는데 이 중 61%는 여가 활동비를 줄였고 약 48%는 휴가 계획을 미루거나 아예 취소했다고 했다. 또 첫 주택 구입자 중 약 44%는 다운페이먼트를 조금이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투잡’을 뛰기도 했다.
◇ 중산층 구입 가능 매물 턱없이 부족
생애 첫 주택 구입자와 젊은 바이어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이들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매물이다. 그러나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매물은 현재 턱없이 부족해 이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시장에 나온 주택 매물 중 연 소득 7만 5,000달러의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 매물은 23%에 불과하다.
전체 매물 중 중산층 소득으로 구입 가능한 매물이 50%일 때 시장이 균형을 이룬 상태로 여겨지는데 현재 이 비율을 크게 밑도는 것이다. NAR에 따르면 4월 말 시장에 나온 매물은 약 110만 채로 1년 전보다 약 5% 증가하는 데 그쳤다. NAR은 중산층이 구입 가능한 매물 가격대를 25만 6,000달러로 규정하는데 현재 이 가격대 매물이 32만 채나 부족해 젊은 바이어들이 주택 구입에 상당한 애를 먹고 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