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양과 학대 피해 후 결국 한국으로 추방돼
한인 입양인 애덤 크랩서(48·한국명 신송혁)씨는 세 살이던 1979년 3월 누나와 함께 미국에 입양됐다. 하지만 유년시절은 지옥이었다. 신씨는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를 받다가 열 살 때 파양됐다. 이후 홀로 크랩서 부부에게 재입양됐지만 심각한 학대를 또 당해야 했다. 크랩서 부부는 심지어 신씨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그를 다시 파양했다. 신씨는 부모 보살핌을 받고 자랄 나이에 차디찬 길바닥에 내몰려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신씨에게는 시민권이 없었다. 양부모는 신씨의 영주권조차 연장해 주지 않았다. 신씨는 이 사실을 27년 만에 누나와 재회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는 뒤늦게나마 영주권을 신청하려고 나섰다가 더 큰 비극을 마주하게 됐다.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청소년 시절 경범죄를 저질러 옥살이를 했던 사실이 드러나 2016년 한국으로 강제추방된 것이다. 그의 억울한 추방 과정과 한국에서 생모를 상봉한 사연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돼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신씨는 2019년 자신의 입양 과정을 주도했던 홀트아동복지회(복지회)와 국가를 상대로 2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신씨 측은 “복지회가 해외 입양을 위해 신씨에게 친모가 있는 걸 알면서도 가짜로 고아 호적을 만들었다”며 “이를 숨기기 위해 ‘신성혁’이었던 본명을 ‘신송혁’으로 고쳤다”고 주장했다. 복지회가 고아가 양부모가 아이를 직접 보지 않고도 입양 알선기관을 통해 입양되는 허점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신씨 측은 복지회가 입양 후에도 사후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아 아동 학대를 당했고 미국 국적 취득을 하지 못해 추방당했다고도 했다.
신씨 측은 정부에 대해선 “복지회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과 자국민인 해외 입양인의 국적취득을 끝까지 책임지는 등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박준민)는 16일 “복지회는 신씨에게 배상금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해외 입양인이 알선 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기는 처음이다.
재판부는 “복지회가 보호의무를 다해서 양부모에게 시민권 취득 절차를 이행하도록 주지시키고, 국적취득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했더라면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추방되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씨가 다른 국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할 수 있더라도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 상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클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신씨의 부모는 신씨에 대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신씨를 호적에 입적하려고 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복지회 측이 성명을 임의로 바꿔 허위의 무적자 취적 절차를 밟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고아호적 위조’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신씨를 대리한 김수정 변호사는 “국가가 해외 입양 피해를 당한 신씨에게 사과하지 않고, 신씨가 아픔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조처를 하지 않아서 소송까지 제기하게 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이) 신씨에게 또 하나의 절망을 안긴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