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스톡런’ 공포 확산, 2020~2021년 저금리 당시 SVB처럼 국채 대거 투자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트스위스(CS)에 이어 찰스 슈왑에도 파산 경고음이 켜졌다.
이번에도 문제는 부채와 자산의 미스매치에서 발생한 채권평가손이다. 미래의 손실을 줄이고자 매도가능증권과 만기보유증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 탓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찰스 슈왑이 한순간에 위기의 진앙지로 지목됐다.
월가는 자산 규모 7조달러인 증권사 찰스 슈왑이 ‘스톡런’(증권계좌 자금 유출)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SVB와 마찬가지로 투자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장기 채권에 담았다가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찰스 슈왑 경영진은 “충분한 유동성을 갖고 있다”고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의 의심은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매도가능증권 1,500억달러 급감
30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 슈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찰스 슈왑이 보유한 미국 장기채의 미실현 손실 규모가 지난해에만 290억달러에 육박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미국 증권사 중 찰스 슈왑은 금리 민감도가 높은 증권사로 손꼽힌다. 최근 몇년 새 장기채 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서다. 실제로 찰스 슈왑은 지난 2020년 이후 약 2년간 낮은 수익률로 만기가 긴 채권을 대거 매입했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기 전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고자 연준이 연이은 빅스텝 행보에 나서면서 미실현 손실을 눈덩이처럼 커졌다.
시장에선 찰스 슈왑이 이를 매도가능증권과 만기보유증권 계정을 통해 감춘 것으로 보고있다. 미실현 손실이 크게 발생한 매도가능증권의 손실 규모를 숨기고자 상당 부분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했다는 지적이다. 매도가능증권의 경우 평가손을 회계년도에 즉시 반영해야 하지만, 만기보유증권은 그렇지 않은 만큼 물리적인 시간을 벌 수 있다.
실제로 찰스 슈왑의 매도가능증권은 지난해 초 2,720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1,279억달러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 기간 만기보유증권은 1,053억달러에서 1,731억달러로 늘었다.
■금 간 7조달러 제국
블룸버그는 28일 ‘저금리를 기반으로 건설된 7조달러 제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찰스 슈왑은 2020년과 2021년 저금리 당시 장기 채권에 대거 투자했는데, 최근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게 역시 핵심이다.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감지한 고객들은 찰스 슈왑의 증권 계좌에 담아둔 돈을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기 시작했다. 찰스 슈왑은 연례 보고서에서 “2022년 단기 금리가 급격히 상승한 결과 고객이 특정 현금 잔액을 고수익 대안으로 이전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밝혔다.
장부 기재 기준을 변경해도 채권 손실을 다 만회할 순 없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년 전까지 찰스 슈왑 장부에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매도가능증권의 미실현 손실이 없었지만 지난 3월엔 50억달러 이상으로 불었다.
찰스 슈왑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순이자수익에 의존하는 것도 급격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순이자수익이란 금융회사가 고객의 돈을 예치받아 줘야 하는 이자와 대출 및 투자 등으로 얻은 자산운용 수익의 차이를 뜻한다. 금융회사로선 금리가 상승할수록 고객의 자산 수익률을 올려야 할 부담이 생긴다. 그런데 최근처럼 고금리가 이어지고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고객들로선 증권 계좌보다 대형 은행의 예금 계좌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찰스 슈왑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서 주가도 연일 하락하고 있다. SVB 사태가 가시화한 3월 8일 이후 25% 급락했다.
찰스 슈왑 경영진은 진화에 나섰다. 월트 베팅어 찰스 슈왑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 “찰스 슈왑은 다른 증권사와 달리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등 현금 1,00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